10월5일 오후2시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고운국제교류사업회(회장 최효석)가 주최하고 진주교육대학교 경남권문화연구소(소장 이재현)와 주간함양 신문사(대표 최경인)가 공동주관한 제6회 한·중 국제고운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열린 학술대회에는 김낙진(진주교육대학교수)가 사회를 맡아 진행했으며 최효석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이사장, 문영일 성균관유도회 함양지부회장, 김태균 함양향교 전교, 함양문화원 김흥식 원장, 중국 양주 최치원기념관 이빈(李斌) 관장, 바르게살기운동함양군협의회를 비롯해 최씨 종친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최병주 고운국제교류사업회 명예회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학술대회는 양국의 관계증진과 상호협력을 토대로 21세기 동북아의 번영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부합하는 인물로서 한·중 교류의 아이콘인 고운 선생을 재조명하고 고운 선생이 남긴 위대한 학문적, 정신적 유산을 재해석함으로써 한·중 양국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구성원 모두에게 분쟁과 갈등을 넘어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최효석 고운국제교류사업회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날씨도 고르지 못한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아시다시피 전국적으로 최치원 선생에 대한 많은 업적이 있다. 그중 무엇을 하더라도 최치원 선생의 ‘인백기천(人百己千 : 남들이 백을 한다면, 나는 천을 하겠다)’의 말을 새겨 노력한다면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고 전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양주 최치원기념관의 발전과정과 미래의 전망(이빈 관장) △아시아 세계질서의 변동과 최치원의 풍류(김성환 군산대 교수) △한시를 통해 본 영남 사인(士人)들의 최치원 인식(이구의 경북대 교수) △최치원과 진감선사 혜소(김방룡 충남대 교수) △고운 최치원을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에 대한 검토(김근호 청주교대 교수)등을 주제로 5편을 발표했다.
발표 후에는 진주교대 경남권문화연구소 이재현 소장이 좌장을 맡고 김경수 산청선비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강정화 경상대 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시와 사상, 시대적 배경 등으로 고운 선생 다각적 조명
한중 우호교류사의 걸출한 대표자◇ 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이빈(李斌) 관장은 ‘양주 최치원 기념관의 발전 과정과 미래의 전망’을 발표했다. 그는 “예로부터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국민은 화목하게 지냈고 교류가 빈번했다”면서 “신라문학가 최치원은 한·중 우호교류사에서 걸출한 대표자이다. 최치원은 회남절도사 막부에 근무하였는데 고성 양주는 그가 당나라에 있는 기간 동안 성취를 휘황찬란하게 했던 지역이다”고 설명했다. 양주 최치원기념관은 2007년 10월 완공 됐으며 최치원 기념당, 기념비정, 한·중 기념비정, 회랑 등 모든 건축물이 당나라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는 “양주 최치원기념관이 완공된 후 양주 시정부와 한국의 여러 지역과의 협력을 전개했다”며 기념관 건립 이래 작업 상황을 발표했다. “진열 및 전시를 완벽하게 하고 최치원 제향 활동을 조직했다. 그리고 최치원을 주제로 하는 문화교류활동을 진행 했으며 한중 우호단체와의 소통 및 연락을 강화했다. 이어 문화교류의 내용을 확대하며 전시시설을 완비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념관의 최근 작업과 미래의 전망에 대해 “2018년 7~8월 풍경구에서 주최한 아동여름 캠프활동으로 당나라 과거 급제 시험을 재현하는 행사를 세 번 진행했으며 어린이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기본적으로는 최치원 기념관의 전시연구를 문화 사업의 핵심으로 진행하면서 환경녹화를 향상하고 최치원 역사문화의 의미를 발굴하고 불교문화의 요소와 융합시켜 당나라 풍격의 민박집을 만드는 등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한·중 국제교류 수당문화전시의 체험 내용을 하나로 묶는 한국풍속문화원을 만들어 중요한 인문경관의 장소로 지정할 예정이다. 분열 극복, 새로운 통일 원리 모색◇ 군산대 김성환 교수는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변동과 최치원의 풍류에 대한 주제로 발표했다. 먼저 최치원과 그의 시대의 제목으로 그의 생애를 설명했으며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변동과 최치원의 시대의식 △지적 재창조 △‘현묘지도’의 재해석 △포함삼교, 접화군생 △토착사상의 재발견 △통일시대의 현묘지도 등에 대해 분석 했다. “최치원의 시대는 당나라 중심의 보편문화가 붕괴되고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문화가 출현하던 시기였다. 물론 이런 문화변동은 극심한 정치 변동의 결과로 나타났으며 정치변동은 새로운 정치질서의 등장에 앞서 먼저 구질서의 봉괴와 분열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그것은 당시 한반도에서 후삼국의 분열과 고려의 재통일로 구현되었다. 이런시대 상황에서 낡은 체제의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통일’을 가져올 원리를 모색하는 것이야 말로 최치원을 비롯한 당시 지식인이 가장 절실하게 고민한 시대적 화두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또한 “남북한이 통일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겨레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디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신적 원리를 구할수 있을까? 최치원이 바람결에 말한다”고 덧붙였다. 학사루 음영시에 고운의 모습이◇ 이구의 경북대 교수는 한시를 통해 본 영남 사인(士人)들의 최치원 인식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시와 비석, 표지판을 바탕으로 최고운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고찰했다. 그 내용은 함양 학사루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본교에서는 함양군 운림리에 위치하고 있는 학사루의 음영시에 나타난 최고운의 모습에 고찰했다”면서 “이 학사루에 대한 음영시가 아주 많지는 않다. 따라서 다른 누정시에 비하여 그 작품수가 많지 않다. 그것은 함양이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시에서 나타난 최고운의 모습은 첫째, 학자로서의 최고운이다. 그가 문한을 담당하는 한림학사의 직책을 역임하였기에, 둘째, 유선으로서의 최고운이다. 그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고운이 그에게 유선가를 지어주었다. 셋째, 시선 또는 사선으로서의 최고운이다. 최고운이 선비이면서 시를 잘 지었다는 점에서. 넷째, 시선으로서의 최고운이다. 고려시대 이인로가 그의 ‘파한집’에서 최고운이 신선이 되어 구름타고 갔다는 말을 강기했다”라고 말하며 마무리 했다. 서산대사가 주목했던 고운◇ 김방룡 충남대 교수는 조선불교의 중흥조인 서산대사가 주목했던 ‘고운 최치원과 진감선사 혜소’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는 △최치원의 불교관련 찬술과 ‘사산비명’의 위상 △최치원의 눈에 비친 진감 혜소의 인물됨과 생애(혜소에 대한 최치원의 인물평, 혜소의 출생과 출가, 출가 후 중국에서의 수도과정, 귀국후 교화과정) △혜소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육조 혜능과 혜소와의 관련성, 혜소의 범패교화와 전래과정, 선운사 검단선사와 혜소와의 관련성) 등의 주제로 두 인물을 비교·평가했다. “한국선종사에 있어서 혜소는 당시 가지산문의 도의 및 실상산문의 홍적과 더불어 한국선이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지만 이후 혜소의 쌍계산문은 희양산문에 흡수되어 고려시대에 이르면 구간 선문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주지하다시피 도의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 추앙되고 있지만 혜소는 일반인들은 물론 불교계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로 전락해 있다. 서산이 ‘최치원과 혜소를 유교와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유·불에 구속되지 않은 인물’로 평가한 것은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이 그만큼 고준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해석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청주교대 김근호 교수는 고운 최치원을 바라보는 역사적 인식에 대해 △고운을 바라보는 다양한 근현대의 시각 △고운에 대한 역사 속의 평가들 △고운에 대한 현대의 공안 등을 검토했다. 역사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사상은 주요한 기준이 된다. 불교적 색채를 지녔던 고운 최치원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문묘에 종사된 이후로 출향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근대 이후에는 오히려 유학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재조명 되었다. 해방공간을 전후한 시기까지 최치원을 유현으로 분류하여 평가하였지만 이후의 학자들은 ‘포함삼교’를 근거로 삼교합일 또는 감교회통의 사상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상사 혹은 철학의 관점에서 부정적 시각도 상존한다.
김교수는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 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제향되었던 인물들에 대한 고려, 조선의 평가는 현대 연구자들의 평가와는 다른 면이 있다”면서 “시대적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 공간과의 거리에 살았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선현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대 연구자들보다 절실하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최치원을 바라보는 현대의 공안은 현재 우리가 최치원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우리가 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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