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의 핵심 이론은 동기감응론(動機感應論)이다. 조상을 좋은 땅에 모시면 후손에게 좋고, 나쁜 땅에 모시면 후손에게 나쁘다는 주장이다. 명당의 암석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시효(時效)가 끝나면 후손이 이금치사(以金致死:쇠로 인해 죽음을 당함. 즉 총이나 칼에 죽음을 당한다는 의미)한다. 또 혈 앞에 복암(伏岩)이 있으면 상패(喪敗)가 빈번하다. 이는 박정희 집안의 양극을 왔다 갔다 하는 행(幸)과 불행(不幸)을 두고서 생겨난 말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가문의 영욕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풍수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을 더 그럴듯하게 여긴다. 기(氣)가 강하게 응결되었음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암석이다. 진혈(眞穴) 앞에 바위가 있으면 기가 새어나가는 것(설기:泄氣)을 막아 주는 증거가 된다. 풍수들은 이런 경우를 ‘바위명당’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무덤 주변이 자연석으로 둘러쳐져 있으면 ‘게의 눈처럼 생겼다.’해서 해목혈(蟹目穴)로 직업 술사들이 분류하는 괴혈(怪穴)이다. 전두환 조부(전영수)의 무덤은 ‘뭇 산들이 두 손을 맞잡고 절을 하며, 여덟 개의 시내가 구비 돌아 율곡의 명당을 형성한 곳’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비문이 새겨져 있는 바위는 무덤 1∼2m 뒤에 박혀 있다. 이런 바위는 술사들이 흔히 ‘입수(入首)바위’라고 하는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후손이 나온다 하여 귀하게 여긴다. 민간에서는 복을 가져다 준다하여‘복바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 바위가 보기 흉하거나 깨졌을 경우 재앙을 가져다주는 흉물로 간주한다.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전두환 생가는 ‘산궁수회처(山窮水廻處)’라 일컫는데, 산이 끝나면서 물(황강)이 마을을 감싸듯 돌아가는 형국이다. 하회 마을과 비슷하다. 즉 득수국(得水局)의 명당이다. 천명은 오고 감이 있으며, 오행의 이치도 어느 한 가지가 항상 성할 수는 없다. 고려 때 묘청의 서경 천도설, 신돈의 서경 천도설, 조선 때 광해군의 교하천도계획 등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풍수도참설을 활용한 것이다. 묏자리가 흉하고 집터가 좋으면 자손은 벼슬길이 좋다. 묏자리가 좋고 집터가 나쁘면 자손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란다. 묏자리와 집터가 모두 좋으면 자손이 영화를 누린다. 묏자리와 집터가 모두 나쁘면 자손이 타향살이에 손(孫)이 끊긴다. 청나라 때 지은『황제택경(黃帝宅經)』에 나오는 내용이다.
동양에서는 천문학상 하늘의 별자리를 세 구획으로 나누어본다. 북극 부근인 자미원, 사자(獅子)궁 부근인 태미원(太微垣), 사견(蛇遣)궁 부근인 천시원(天市垣)이 그것이다. 이렇게 하늘의 별자리에서 핵심중 하나인 자미원은 땅의 논리에도 적용돼 명당길지의 이름으로 사용됐다. 한반도에서 자미원이란 말이 풍수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조 세종 때 당시 풍수사였던 문맹검이 한양 도성, 즉 경복궁을 자미원에 해당되는 천하의 길지라고 칭 한데서 부터이다. 이후 자미원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이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충남 예산 가야산 밑 명당에 쓰고 나서 대원군이 되자, 더욱더 욕심을 부려 자미원 명당을 찾아 나섰다는 야사에서다. 이곳에 명당을 쓰면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자,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더보다 더 막강한 권력자가 나온다는 풍수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원군도 이 자리를 찾지 못했으며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찾으려 하였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육관 손석우도 이 자미원 명당 얘기를 꺼내며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부추기기도 했다. 대략 그 범위는 점점 좁혀져 당진 이남과 홍성 이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청나라 때 쓰여진 ‘청오경(靑烏經)’에서는 “산이 멈추어 뭉치어 물이 감아 돌면 자손이 번창한다. 서출동류(西出東流)하면 재물이 무궁할 것이고, 세 번 돌고 네 번 내지르면 관직(官職)이 갈수록 높아진다”고 했는데 그 일례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무덤의 대부분은 좋은 땅이라 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화장(火葬)을 하여 흔적을 없애는 것이 후손에게 해가 없다는 것이 풍수논리이다. 풍수지리는 곧 자연이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하나하나 실험하고 검증하는 것으로 그 영역을 넓혀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명 할 수 없는 자연의 영역은 여전히 광범위하다. 추석 때 조상의 산소(山所)를 성묘할 때 한 번 살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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