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천골 사람들과 지리산둘레길을 걸었다. 둘레길이 지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 길이 머가 좋다고 사람들이 와쌓능가” 하며 새삼스레 걸어본 것인데, 매동마을에서 첫걸음을 떼어 지리 주능이 보이는 다랑이 논길을 지났다. 벼농사는 풍년이었다. 모두들 나락이 잘되었다고 싱글벙글. 황금 벼가 고개 숙인 논길을 걸으며 이 많은 곡식들이 모두 내 곳간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뿌듯해했다.
등구재를 넘어 창원마을로 가는 오솔길. 잎사귀가 큼직한 활엽수의 서늘한 터널을 지나니 고개를 넘어오며 흘렸던 땀이 다 씻어졌다. 이렇게 매력 넘치는 길은 걷다가 되돌아가서 다시 걷고 싶어진다.
등구재를 넘어 창원마을로 접어들면 물맛이 좋은 샘이 있다. 바가지로 물을 마시며 서울말 하는 아이에게 물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바삭바삭해요”한다. 표현이 재밌어 어디서 왔냐고 하니 101동에서 왔다고.
여기서 농사지으시는 영감님이 샘가에 쉼터를 만들어 놓고 막걸리와 농산물을 판매하신다. 농사일에 바빠 자리를 지키지 못하시는 듯 매직으로 이렇게 써 놓았다.막걸리 4,000원음요수 1,000원고사리 만원빨강콩 만원까망콩 만원태양초고추 15,000원알아서 드시고 돈은 여기예우리는 시원한 막걸리 두통을 알아서 마시고 돈을 <여기예> 넣어두었다. 들리는 말로 영감님은 이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고추 50근과 고사리 등 나물을 많이 파셨다한다.
창원마을 당산나무 아래서 마천 짜장집으로 짜장면을 주문했는데 배달이 안 된다고 한다. (세상에나... 13그릇이나 되는데... 배달이 안 된다니....) 마침 창원마을에 사는 일행의 집으로 가서 라면을 끓이고 밥을 말아 먹었는데 오히려 더 맛있다. 점심을 배 불리 먹고 마당에 서니 지리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창원 당산에는 수백년 묵은 당산 나무가 둘 있는데 세동마을 이장이 오른쪽이 할매 당산나무이고 왼쪽이 할배 당산나무라고 한다. 왜 할매고 할밴지 생김새를 보니 바로 수긍이 가서 모두들 즐겁게 웃었다.
창원에서 금계가는 길은 이맘때가 가장 좋다. 우아한 에쓰라인의 다랑이 논과 꿈길같은 고갯길, 수수와 조가 익어가는 밭길을 걸으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길은 없다는 확신이 들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좀 쉬고 싶은 사람은 지리산길을 한번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이런 길은 걷는 게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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