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너무나 무덥고 힘들었습니다. 사반세기 넘게 선생 노릇을 해오면서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바뀐 시대에 맞추어 살지 못하고 내 생각만을 너무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책임과 의무보다는 권리만 너무 앞세우는 현실 앞에서 갑갑하고 답답했습니다. 아버지 보증 선 일이 잘못되어 충격 받고 병으로 돌아가신 후,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봐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살아가려던 저에게 “큰 아야, 너도 힘들지만 애미도 힘들다. 그래도 우리 큰 아가 대학생이면 애미가 좀 더 잘 버틸 것 같은데 학교 다시 가면 안 되겠니? 애미는 못 배운 게 한인데 우리 큰 아가 좋은 선생님이 되면 좋겠는데......” 눈물 흘리시며 애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그 험한 세월 지나오시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오시며 아들이 좋은 선생이 되기를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고향에 와서 선생 노릇하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고 제자들이 잘 따라 주어 즐겁게 그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고향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까 염려되어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적어 놓은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때의 나의 다짐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지금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니 부끄럽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의 꿈을 소중히 여기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안내하고 지도할 수 있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비전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민족의 이야기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박하고 소중한 꿈을 소중히 여기며 학생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성실을 강조하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최선을 다 한다면 모든 일이 잘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예의를 강조하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예의를 지킬 때 정이 더 붙고 예의를 어기면 있던 정마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나에게 배웠던 학생들은 예의 바른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겸손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싶습니다.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겸손한 자가 높이 들려지는 날이 올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벼가 영글수록 고개를 숙이듯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이 속이 알찬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손해 보더라도 나는 학생의 입장에 서고 싶습니다. 학교에서의 가장 우선순위는 학생입니다. 내 잣대대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든지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학생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나의 제자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위의 항목을 들어가며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스쳐 가는 모든 제자들이 좋은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인격체로 세워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길 바랍니다. 그때 그 어린 나이에 너무 거창한 다짐들을 해놓았습니다. 조용히 미소 짓다가 현실의 무게 앞에 답답하고 갑갑해서 교정을 걸었습니다.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몇몇은 일부러 다가와 자랑을 합니다. “선생님 저 이번에 모의고사 성적 엄청 올랐어요. 이제 국어영역 문제가 풀리기 시작해요. 선생님 비법 끝내줘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축하한다. 네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지. 고맙다. 열심히 해라.” 모의고사 대비 수업을 5시간 정도 하고 시험을 보게 했더니 며칠 전 치른 전국연합 학력평가에서 대부분의 학생들 성적이 올랐는가봅니다. 소중한 나의 제자들이 성적뿐만 아니라 인격도 꿈도 소망도 다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되기를 또 다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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