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 도시화가 진행된 남쪽 숲에는 운동장이 하나 있다. 이 운동장은 상림운동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함양체육회 원로의 증언에 따르면 1945년 해방 전에도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운동장은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듯하다. 처음에는 좁게 되어 있던 것을 해방이 되고 나서 체육행사장으로 원활하게 쓰기 위해 넓혔다고 한다. 이 운동장에서는 8·15해방 기념으로 대단위의 축구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경상도와 전라도 인근 시군 지역에서 다 모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고 한다. 그 후 이 숲속의 천연 운동장은 축구를 비롯해 함양군민의 다양한 놀이와 행사의 주요무대가 되었다. 함양사람들은 놀이문화의 상징성이 대단히 큰 이 공간에서 문화적 충족감을 누리고, 생활의 활력을 찾았다. 함양군은 1962년 천령문화제와 군민체육대회를 처음 시작한 후, 천령문화제는 봄에, 군민체육대회는 가을에 정기적으로 매년 행사를 열었다. 이들 행사에서는 차전놀이, 그네뛰기, 민속씨름, 마스게임 같은 것을 했고, 축구시합도 했다. 이 운동장은 학생들의 체육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마을 단위로 운동장에 와서 노는 일들이 아주 많았다. 단오날이나 명절이 되면 그네뛰기, 씨름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함화루를 행사본부장으로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앞쪽으로 나무 기둥에 시멘트 벽돌을 쌓아 본부석을 만들어 이용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지금 없어졌다. 1996년 운동장 동쪽에 체육행사를 위해 콘크리트로 지은 본부석 다볕당이 남아있다. 함양공설운동장이 생기기 전까지 모든 행사와 경기는 이 운동장에서 열렸다. 상림운동장은 관민이 함께 이용했던 천연숲으로 이루어진 함양 최고의 행사장이요, 놀이터였다. 함양군민의 삶에 신선한 충전소 같은 역할을 해온 이 운동장은 애정과 추억이 듬뿍 담긴 장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동시에 일제강점과 산업성장의 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숲에 수난을 안겨준 애증의 역사를 안고 있다. 군인 출신 지역원로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인민군들의 탄약창고가 운동장의 다볕당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탄약고는 인민군들이 철수할 때 불을 질러 밤새 불바다가 되기도 했다. 60년 말에서 70년 초에는 읍내 지방도로 확장을 위해 공병대가 상림운동장에 주둔을 하기도 했다. 이때 온갖 자재와 돌덩이들을 운동장에 쌓아놓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는 이 운동장이 생기는 최초의 원인제공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 이 운동장에서의 행사는 제한되었다. 그 이유는 천연기념물 제154호인 함양상림의 숲 한가운데에 들어선 운동장과 부대시설이 숲의 생태환경에 무리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이용과 소음은 생태환경에 피해를 주는 등 공해를 일으키고 숲에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답압으로 인해 흙의 표면이 다져지면서 수목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 숲바닥이 황폐화되어 자생하는 풀꽃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생태계는 그물망처럼 얽혀 있어 한 생물종의 수난은 다른 생물종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도시화에 고립된 상림숲 전체의 안위는 지금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이제 상림운동장은 푸른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격동의 세월을 끌어안은 채 긴 휴식에 들었다. 3000여 평 규모의 잔디밭은 가족이나 연인 등 방문객들의 소풍 또는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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