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닭울음 소리 때문에 새벽4시에 잠을 깨면 10초 간격으로 2시간은 족히 울어대니 밤잠을 설치고 잠을 못 잡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아는 로보캅 순경님이 말한다. 글쎄요, 그놈의 닭이 고성방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주가무하는 것도 아니고, 집단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폭행치사도 아니니 거참 곤란한 문제네요, 참.
산골 계곡에 살다 원교라고 하는 향교 동네에 와서 넉달 남짓 살다보니 닭울음과 싸워야 하는 난감한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아내는 향교 동네를 몇 번 와 보았는데 동네가 아늑하고 어머니 같은 고향의 푸근한 느낌이 든다고 꼭 이곳에 땅을 사서 집을 지어주세요라고 부탁했었다.
살아보니 상림 기슭 자락에 남향이라 그런지, 아직 개발이 안 되어서 그런지 아늑하기 그지없다. 백년은 넘은 듯한 소나무 숲 풍경이 창가에 고즈넉이 걸려 차를 마실 때면 솔향이 묻어나는 것 같다. 눈과 마음을 그곳에 걸어둔다.
앞뒤로 보아도 정감이 가고 아름다운 것은 이 동네에 향교가 있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옛날 선인들이 교육을 위하여 마을에 향교를 지을 때 얼마나 많은 풍수지리를 살펴보았겠는가. 좌청룡 우백호에 실개천이 흐르고 남향에 저 멀리 왕산이 보이고 무릇 우거진 숲이 있어 마을을 품어 안아 모난 데 없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명당에서 인재가 나는 법 향교터를 잘 잡아야 후손들이 잘 되거늘 향교를 잘 세우지 않으면 마을의 번성은 기대할 수 없다. 향교에서도 명당 터가 있는데 그게 우리 집이라고 그런다. 나도 삼대만 기다리면 재상이 나올 것은 따 놓은 당상인데 아깝게도 아들이 아직 백수다.
고려 후기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조승숙의 ‘명륜당기’에 따르면 함양향교는 1398년(태조 7) 소소당이 있던 자리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조 때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었다가 대성
전을 중수하고 동재, 서재, 문루를 건립하게 된다.
600년도 넘은 역사도 깊은 함양향교 맞은편에 살다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아침마다 일어나 향교를 마주보고 서서 나는 풍월을 읊는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하늘은 가맣구 따는 누르다. 천현이지황이니, 하늘은 그 이치가 깊구 그윽해서 헤아리기 어려운디, 따는 또 흙이라 누른 빛이 나는 고여. 무시무종 비롯됨도 없고 마침도 없다는 천자문의 시작, 우주의 시작이라고 김성동 작가는 말한다.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를 이 향교 동네에 와서 날마다 생각할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복 받은 것이냐.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한다.
시내에 붙어 있지만 곳곳에 양파 마늘 들깨 옥수수 같은 농작물이 자라고 있어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담장에 석류와 능소화가 흐드러졌다. 울타리에 붉은 장미나 라일락이 피었다. 왕방울 대추가 가지를 휜다. 가지 찢어지게 주먹만한 푸른 땡감은 달려있다. 곧 홍시가 되리라. 며칠 전에는 갓 쓰고 흰 무명옷을 입은 선비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보았다. 구경하러 가야겠다. 맑은 공기 가득한 새벽이나 어스름 땅거미 지는 저녁 향교 동네를 거닐어 보는 것은 도시에서 갖기 힘든 행복이다. 고전이 있어야 현대가 빛난다. 온고지신, 구본신참을 새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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