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볼라벤에 이어서 6년 만에 찾아온 태풍이라는 점에서 19호 태풍 솔릭은 모두를 긴장케 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중부지방 영동과 경북 쪽에 돌풍과 함께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특히 제주도에는 22일부터 사흘간에 걸쳐 1030㎜의 비가 쏟아져서 그야말로 물 폭탄을 방불케 했다. 다행히 더 이상 큰 피해 없이 태풍이 지나가서 감사하다. 예전에는 삼원일(三 元日)이라고 해서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이 있었다. 상원은 음력 정월 보름, 중원은 음력 7월 보름, 하원은 음력 10월 보름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은 마침 음력 7월 보름, 중원에 해당되는 날로 백중(百中, 百衆)이라고 해서 농촌에서는 모처럼 한가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이렇듯 농촌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에 순응함이란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인데, 남북 이산가족 1차, 2차 상봉 행사 역시 막혔던 인맥을 이어주는 행사인 만큼, 이념이나 체제를 넘어서 한시적으로나마 인도적인 차원의 만남이 성사된 것에 대해서 온 국민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통적으로 백중이 되면 농민들은 파종과 모내기 등의 일을 끝낸 후에 모든 피로를 풀면서 그동안 수고한 일꾼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쯤이면 온갖 과일과 채소가 흔해서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차려놓고 감사제를 지냈다고 해서 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종교적으로는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어서 갖가지 음식과 과일, 술 등을 차려 놓고 조상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백중절의 정신만큼은 되새겨 봄직하다. 대부분의 농촌지역에서는 백중이 되면 ‘호미씻이’라는 행사를 했다.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주인공으로 선택해서 그 집 머슴의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삿갓을 씌운 뒤 도롱이를 입혀서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기도 하고, 황소 등에 태워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 해 최고의 머슴이 자기 집에 찾아오면 술과 안주로 대접하면서 춤을 추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농촌에서는 일손을 놓고 쉬는 날이 바로 백중이다. 이날은 농사일을 하느라 수고한 머슴에게 푸짐한 음식으로 위로하며 술과 안주로 흥을 돋았다는데, 홀아비 머슴이나 노총각 머슴에게는 참한 신부 감을 골라서 장가까지 보내줬다고 한다. 백중날이 머슴들에게는 가히 축제의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백중날은 근로자의 날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근로자들은 기업이나 사업체의 대표(사장)를 위해서 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움직여나가는 기수(騎手)들이다. 태풍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꺾이고 과일이 떨어지거나 나무가 뿌리 채 뽑히기도 하지만, 머슴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기업이나 사업체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심지어 도산까지 할지라도 열심히 일하는 사원이 없으면 회사도 기업도 심지어 국가도 속 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조상들은 일꾼들에 대한 배려와 위로의 차원으로 백중날을 중요시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 근로복지공단을 두고 있다. 근로자들을 상전처럼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필자의 아내 역시 근로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햇수로 5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지난 3월 12일의 일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급한 마음에 근로자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오랜 심사 끝에 지난주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90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지만, 판결이 뒤집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카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법뿐인데, 법률적인 지식도 없는데다가 변호사 선임 비용도 그렇고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서민들에게 무료 법률 자문과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기에 상담을 요청해 놓기는 했지만, 뇌출혈로 쓰러진 후 한 번도 문병을 와 주지 않는 회사 측의 태도에 섭섭함을 금할 길이 없다. 노조도 없는 회사에서 사우회(社友會) 회장으로서 50명이 넘는 사원들의 친목을 도모하며 우호적인 사내 분위기를 만들어 왔던 사람인데 말이다. 중원(中元)이라는 백중날을 맞아 대한민국은 과연 근로자를 으뜸으로 여기는 사회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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