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직장 다닐 때는 수출업무를 담당해서 해외출장을 가면, 업무가 없는 날엔 종일 그림을 보러 다녔다. 예를 들어 뉴욕 출장을 가면 5번가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개장 시간에 들어가서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퇴장 시간에 헐떡거리며 나오는 식이었다. 좀 더 많은 작품을 보기 위해 시간을 아낀다고 햄버거 하나로 점심을 때우곤 했다. 이집트에 가면 기자지구에서 미친 말을 타고 피라밋을 본다든지 카이로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그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는 게 없어서 하루 종일 미술관을 돌면서 내가 뭘 보는지도 모르고 보았다. 나는 그냥 그림이 좋았다. 인류사에는 수많은 형식의 예술이 있고 문외한인 내가 그 모든 작품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형식의 예술이었다.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 화조류를 아주 인상적인 화폭에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는데, 팔뚝의 호랑이가 뛰쳐나와 나를 한 대 칠 것 같은, 그림 속의 장미 가시가 내 똥배라도 찌를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모두 좋은 작품임에 틀림없었고 조심스레 다룰 필요가 있었다. “사장니임~ 고기 한 점 하세예~” 씨원한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배가 고파진 예술을 사랑하는 아홉 외인구단이 바비큐 파티를 하며 거듭 사양하는 나에게 두 번 세 번 한 점을 권해서 예의상 한 점 먹고 예의상 술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한잔만 더 하시라고 권해서 그럼 딱 한잔만 하고 마시다 몇 잔인지 따지는 게 의미가 없어지긴 했는데, 나는 권하는 술을 예의상 마시면서 사람은 특히 예술가는 겉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는 말이다. 요즘 같은 폭염에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건 건강에 절대 유익하지 않다. 나는 술을 마시면 취하기 때문에 잘 안 마시는데 그날은 예의상 약간 마셨다. 모르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대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거절하게 되면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앗따~그 사장님 대게 빼시네~ 술 한잔 권하고 추가비용 좀 깎을라고 했더니만...눈치 채셨나?) 그날 저녁 아홉 외인구단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술이 과하여 고성방가하고 자기네들끼리 주먹다짐도 벌어져 다른 객실 손님이 불안해서 벌벌 떠는 염려했던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많다보니 좀 시끄럽긴 했지만 고기 구워 술 먹고 밥 먹고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자 신경 쓸 필요 없는 추가인원 네 명은 빠져나갔다. 다음 날 정오 경에 일어난 다섯 명도 라면 끓여먹고 내가 다른 객실 청소하느라 바쁠 때 추가 요금 만원 내는 걸 잊어버리고(?) 갔다. 퇴실한 방을 보니 분리 수거가 안 되어 라면 박스에 각종 포장 쓰레기랑 음식 쓰레기까지 뒤섞여 있고 그릇은 기본 설거지도 안 되어 있어, 나는 예술가의 형식과 내면에 관한 나의 견해를 다시 한 번 수정했다. 나는 추가 비용 만원을 받으려고 전화를 했는데 어떤 사정에 의해 전화가 연결될 수 없다는 멘트만 들렸다.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반가운 밴츠가 다시 올라왔다. 냉장고에 넣어 놓은 술을 잊어버리고 간 것이다. 덕분에 나도 추가 요금 단돈 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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