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농일치·사경통선 수행한 선승선농일치(禪農一致)와 사경통선(寫經通禪)으로 정진한 지리산의 선승 서암정사 회주 원응(元應) 큰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지난 8월19일 서암정사에서 석암문회 문도장으로 봉행됐다. 원응 스님은 이에 앞선 8월15일 법랍 66세, 세수 84세로 열반에 들었다.
해인사 방장 원각(源覺) 스님은 영결식 법어에서 “지리산은 높기 때문에 명산이 된 것이 아니라 원응선사의 법향이 높기 때문에 명산이 된 것이다. 칠선계곡이 깊다고 명수(名水)가 된 것이 아니라 선사의 법수(法水)가 항상 흐르기 때문에 명수가 됐다. 선사의 법향은 곤륜산(崑崙山)이 되고 법수는 향수해(香水海) 되어 남섬부주(南贍部洲)를 더욱 높고 더욱 깊게 장엄할 것”이라면서 “스님의 덕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천년만년으로 이어질 것이다”고 열반에 든 원응 스님을 찬탄했다.
원응 스님은 ‘밝고 밝은 신령한 근원의 본체는(명명영원체 明明靈源體) 고요하며 머무는 바가 없도다(적연무소주 寂然無所住). 자체는 형색도 없으니(자체비형색 自體非形色) 인연 따라 온갖 것을 알 뿐이니라(수연만반해 隨緣萬般解)’라는 입적게(入寂偈)를 남겼다.
원응 스님은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전국의 제방에서 참선공부에 매진했다. 1961년 지리산 벽송사(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 도량을 중창하고 1985년에는 벽송사 인근에 서암정사를 창건했다.
1970년대 말 원력을 세우고 서암정사 불사를 시작한 스님은 새벽 예불로 하루를 시작해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사경을 수행 삼아 정진했다. 사경통선(寫經通禪)을 주창한 스님이 1985년부터 15년에 걸쳐 ‘대방광불화엄경’ 80권 전권을 먹사경과 금니사경한 불사는 고려시대 이후 최초라는 드문 기록으로 회자된다. ‘화엄경’ 전문 59만8000여자를 4년여에 걸쳐 한 자씩 먹으로 옮겨 적은 후 그 위에 곱게 빻은 금가루를 이용해 다시 붓으로 적은 금니사경에 6년이 걸렸다. 이를 마무리하는데 또 5년이 걸렸다. 작업에 소요된 금은 신도들이 공양(供養) 했고 닳은 붓만 60자루에 달했다고 한다. 15년에 걸쳐 완성된 ‘금니화엄경(金泥華嚴經)’은 14~15m 크기의 병풍형 책자 80권이다. 세계 최대 두루마리형 도서로 전체 길이만도 1.3㎞에 이르는 대작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사경으로 꼽히는 이 사경은 지난 2010년 9월 대웅전 지하에 상설 전시관을 마련,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전시관에는 원응 스님의 서화 200점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서암정사는 원응 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안에는 대방광문, 석굴 법당, 광명운대, 사자굴 등이 있는 데 이들 모두 자연 암반에다 굴을 파고 조각을 함으로써 불교예술의 극치를 이룬다. 우리나라 3대 계곡 중 하나로 이름난 칠선계곡의 인근에 위치해 많은 신도와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원응선사 열반에 제(題)하며…> 해인총림 방장 벽산원각(碧山源覺) 스님
“법향은 곤륜산 되고 법수는 향수해 되어 불멸하소서”
산불재고(山不在高)이나 유선즉명(有仙則名)이며, 수불재심(水不在深)이나 유용즉령(有龍則靈)이로다.(산이 높다고 명산이 아니라 인물이 살아야 명산이요, 물이 깊다고 명수가 아니라 용이 살아야 명수로다.)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대지문수사리보살께서 이 산에 찰간(刹竿)을 세우면서 반야지혜의 대지(大地)가 된 인연을 따라 지리산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후 조선전기 지엄(智嚴)선사께서 조계의 선풍을 지리산 벽송사에서 거듭 밝히시니 그 뒤를 이은 고금(古今)의 명안종사(明眼宗師)들이 해동(海東)의 전역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은 그야말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의 명산 명천(名川)이라 할 것입니다. 부산 선암사에 주석하시던 석암대율사의 슬하를 떠난 원응(元應) 대선사께서도 1960년대 초기에 지리산에서 석장(錫杖)을 멈추었습니다. 동족상잔의 상흔으로 인하여 명산명천(名山名川)은 어느 새 처처(處處)에 붉은 핏빛이요 골짜기 골짜기마다 흰빛유골이 흩어진 무주고혼지처(無主孤魂之處)로 바뀌었습니다. 선사의 중생에 대한 가이없는 연민심과 자비심은 지리산을 안양세계(安養世界)로 환원할 것을 발원하신 것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벽송사를 중창하였고 연이어 서암정사를 창건하여 반백년의 불사수행으로 이어지면서 비로소 그 대원을 성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언제나 본분납자(本分衲子)로서 사경참선으로 정진하셨고 묵향으로 보살도를 실천하면서 서암을 화엄세계로 장엄하니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보보불국(步步佛國)입니다. 낙동강이 노래 부르고 천왕봉이 춤을 추니 대방광문(大方廣門)을 오가는 장삼이사(張三李四)(모든 사람들)마다 커다란 환희심으로 가득하니 그 공덕을 어찌 말로써 다할 수 있겠습니까.지리산은 높기 때문에 명산이 된 것이 아니라 원응선사의 법향이 높기 때문에 명산이 된 것입니다. 칠선계곡이 깊다고 명수(名水)가 된 것이 아니라 선사의 법수(法水)가 항상 흐르기 때문에 명수가 된 것입니다. 이후 선사의 법향은 곤륜산(崑崙山)이 되고 법수는 향수해(香水海) 되어 남섬부주(南贍部洲)를 더욱 높고 더욱 깊게 장엄할 것입니다. 오백여년 전 벽송지엄 선사를 다비할 때 마음으로 오늘 서암 원응 선사 가시는 길을 찬탄하나이다. 혼구일촉(昏衢一燭)이요 법해고주(法海孤舟)이니, 오호불민(嗚呼不泯)이요 만세천추(萬世千秋)로다.(어두운 세상을 홀로 밝히는 등불이시며 진리의 바다를 건너는 외로운 작은 배로다. 아! 스님의 덕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천년만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불기 256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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