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나라 일본에서 태어났고 제가 살았던 나가사키 현이 그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곳입니다. 1945년 8월6일 아침 8시15분 어제와 똑같이 아침을 시작하고 그 하루가 어떤 날이 될 지도 모르고 평소대로 시작하고자 했던 그 순간에 히로시마 하늘에서 떨어졌던 원자폭탄 우란235-리틀 보이(화약15000t 상당)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14만 명의 생명을 빼앗았고 그 가족들의 슬픔을 만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3일후 8월9일 아침 11시2분 또 다른 원자폭탄 플트니움239-화트맨(화약22000t 상당)이 나가사키의 하늘에서 나가사키시내에 투하됐습니다. 그 위력이 히로시마에 1.5배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산이 둘러싸는 지형 때문에 열선과 폭풍을 산이 막아주고 그 피해는 히로시마보다 경감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원자폭탄이 7만 명 이상의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나가사키 시에서 기차로 2시간 떨어진 사세보 시라는 곳이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경험하는 분은 주변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폭풍은 사세보까지 왔고 집의 창문이 깨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는 꼭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에 갔습니다. 거기서 봤던 사진들은 너무나 참혹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진 속 사람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 해도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무시당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 중에는 행복했던 그 다음 순간에 모든 것을 빼앗기며 사람으로서 숨 쉬는 것조차 빼앗겼던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거기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되는데 못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한 마음으로가 아니라 징그러워서 못 먹었습니다. 그렇게 밖에 느끼지 못하는 자기가 죄송해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 번째 투하 목적지는 나가사키만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무기 공장이 있었던 고쿠라 시였지만 그 날 거기에 하늘은 시야가 너무 안 좋아서 제2 목적지였던 나가사키에 투하됐습니다. 고쿠라 시도 나가사키 시도 무기 공장이나 조선소가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됐다고 합니다. 그 때 사세보에도 큰 조선소가 있었고 지금도 미군이 주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남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발 후손에게 평화를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더 무서웠던 것은 일본이 8월15일에 항복하지 않았으면 8월17일에 동경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동경대규모공격으로 큰 피해를 얻었던 동경에 혹시 투하됐었다면 희생자가 100만 명을 넘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것은 100만 명의 희생을 막기 위한 경고이고 처치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작은 피해가 막아줬다고 해도 그 작은 피해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세계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도 모두가 원자폭탄 투하에 찬성을 했던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 젊은 국민들 중 원자폭탄에 대한 질문조사에서 “원자폭탄 투하는 잘못한 판단이었다” 는 답 45%, “맞는 판단이었다” 고 했던 답이 31%를 넘었답니다. 우리는 세계를 볼 때 ‘한국은, 일본은, 미국은’ 라고 보지만 그 각 나라에는 ‘자기의 생각’을 가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있는 나라들의 외교적인 결과가 꼭 그 나라 모두를 대표하는 의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지상에 핵무기가 15000개 정도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평화를 외치고 가야될까요? 국경을 넘어서 하나가 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핵무기를 없애는 평화운동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원자폭탄이 필요 없는 사회와 세계 만들기가 필요합니다. 그 기본은 가정에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원자폭탄 투하지 나가사키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 지역에서 많은 평화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부모에게 꾸준히 전해진 평화에 대한 교육이 저의 마음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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