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노송의 밑동을 사선으로 받쳐 들고 있습니다. 73년 전 오늘을 생각해봅니다. 며칠 후면 해방된다고 아는 이가 몇 있을까? 8월15일은 국경일 중에 으뜸인 광복절입니다.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된 감격보다도 주권을 되찾은 명예회복의 의미가 짙기 때문입니다. 1910년 8월22일은 일본에 의한 강제병합으로 35년간의 민족 암흑시대의 시작입니다. 1945년 8월15일은 어둠의 끝을 알리는 새 빛이 비친 날입니다. 마치 수년간 땅속에 있던 씨앗이 빛을 보고 싹이 튼 것 같습니다. 나는 공직에서 퇴직하여 객토하여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땅속 깨끗한 마사토를 제법 덮었는데 바랭이, 방동사니, 쇠비름, 참비름, 소리쟁이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틈틈이 자라납니다. 잡초를 매고 나면 그 다음 발아 조건을 충족한 씨앗이 돋아납니다. 요즘 폭염으로 물주기와 잡초 매는 것이 일입니다. 누가 얘기한 ‘농사의 시작은 잡초와의 전쟁’을 실감합니다. 씨앗이 발아하기 위해선 공기, 수분, 온도가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광발아성 종자는 땅속에서 햇볕을 느낄 정도의 흙이 덮여야 발아가 됩니다. 종자를 깊이 심어 빛을 못 느끼면 발아하지 않습니다. 바랭이, 쇠비름, 참비름, 방동사니, 소리쟁이, 우엉, 뽕나무, 금어초, 베고니아, 상추, 진달래, 쑥갓, 당근, 셀러리, 배추, 양배추, 딸기, 귀리, 민들레, 잔대, 가문비나무,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 박달나무, 동백나무의 씨앗은 빛이 반드시 있어야 발아합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잠든 영혼을 깨워 자라게 합니다. 빛은 해방입니다. 억압과 공포에서 자유하게 합니다. 빛은 구원입니다. 질병을 이겨내고 절망에서 살아나게 합니다. 빛이 있는 자연은 늘 광복光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나도 늘 빛으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광복하며 살게 하소서. 오래 전 빛을 잃은 한 청년이 부르고 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중략-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시인의 ‘초혼招魂’입니다. 초혼은 혼을 부름을 뜻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평상시 입었던 저고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어 지붕에 올라서거나 마당에서 북쪽을 보며 ‘어느 동네 아무개 복復’이라고 세 번 부르는 것입니다. 초혼이 출간된 시기는 1925년으로 우리나라 주권이 일본에 빼앗긴 지 16년이 지났으며 김소월의 나이 스물넷이었습니다. 시를 읊조릴 때마다 피 끓는 한 청춘이 나라 잃은 설움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행적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다시 ‘대한大韓’이란 이름을 부를 수 없음을 느끼며 서정시 속에 그 마음을 넣었으리라 느껴 봅니다. 그 마음은 어둠속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없겠다는 절망 속에서도 빛으로 돌아올 ‘광복’을 늘 노래 불렀습니다. 그가 떠나고 11년 후인 1945년 8월 15일에 그 이름이 돌아 왔습니다. 대한이와 광복이를 부릅니다. 모든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대한제국 만세! 태극기 깃발아래 영원하라!’ 돌아온 빛은 생명을 불어 넣었습니다. 불가능 할 것 같은 잡초는 견디었기에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빛이 어둠의 세력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나약한 백성이지만 한 알의 씨앗이 썩어졌기에 세상을 자유하게 합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빛이 내립니다. 자연은 늘 광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지리산 아래 첫 동네, 함양 땅에 사는 사람들은 늘 빛으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광복하며 살게 하소서. 이름도 모르는 들꽃의 향을 느낍니다. 곧 꺾길 들풀을 봅니다. 기약 없는 씨앗을 퍼뜨립니다. 감동적이요 감탄하며 감격합니다. 오늘도 텃밭에 나아가 이름을 부릅니다. 잡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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