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은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 환경 덕분에 옛날부터 품질 좋은 송이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밤낮의 기온차가 커서 당도 높은 곶감 산지로도 유명한데, 옛날에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고종시로 알려진 곶감의 주산지다. 함양에는 곶감과 송이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을 여기 사람들은 ‘송이 밭’ 이라고 하는데, 물론 송이를 사람이 재배하는 것은 아니고 밭에서 재배한 것처럼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말이다. 송이는 해마다 나는 자리에서 나는데, 그 송이 밭은 아들에게도 안 알려준다고 한다. 송이 철에 자신만이 아는 송이 밭에 한번 올라갔다 오기만 하면 상당한 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는 자식에게도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잘 아는 함양 유림면의 한 지인은 아버지가 해마다 상당량의 좋은 송이를 채취해왔다는데,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송이 밭 위치를 물어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지인은 5남매 중 장남으로 자기가 송이 밭의 위치를 알아낼 요량으로 송이 채취시기에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다년 간 공을 들였지만, 아버지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들을 따돌리고 혼자서 송이를 캐왔다고 한다. 한번은 아버지가 배낭 메고 꼬챙이 챙기는 걸 보고 “아버지 같이 갑시다~” 하고 따라 붙었는데, 그날은 B급 송이만 조금 캐고 성과가 미미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송이가 없는 곳으로 돌았다는 것이다. 과연 아버지는 다음 날 혼자 산에 올라가 상당량의 송이를 채취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송이 밭 위치를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버지는 갈 길이 너무 바빠 그 중요한 정보를 남기지 않고 가버린 것이다.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 숨넘어가며 마지막 유언을 하는데 느닷없이 “그런데 아버지 송이 밭이 어딥니꺼?” 하고 물어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아들 둘, 딸 셋이 모인 첫 기일이 마침 송이가 나올 철이라 자연스레 아버지의 송이 밭 얘기가 나왔다. 5남매 중 누군가는 그 것을 알고 있을 거라고 서로 의심(?)했는데, 제사 지내고 나서 얘기를 해보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가는 사람은 서둘러 가느라 그것까지 말하고 갈 경황이 없었고, 보내는 사람은 그놈의 도리 때문에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함양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곶감 장인이 지곡에 있었다. 그 사람이 만든 곶감은 맛이 특별해서 국내 L그룹의 회장이 매년 주문했다고 한다. 곶감을 만드는 이웃 사람들은 그 장인만의 곶감 만드는 비법을 배우려고 무던 애를 썼는데, 그 장인은 혼자만의 노하우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알아낸 것은 그 장인이 곶감 채반을 저녁에 한번 아침에 한번 여기저기로 옮긴다는 것 뿐이었다. 십 수년 전 내가 처음 곶감 만들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런 명품 곶감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해보니 기술이란 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터득되는 게 아니었다. 명품 곶감을 만들기 위해 수 천만원 어치의 곶감을 버리고 나서 나도 이제는 그 장인의 경지에 올라섰다. 올라서보니 그 장인이 자기만의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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