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급식 홍보자료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인자살자의 숫자도 10년 새 2배로 늘어 노인자살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노인들의 죽고 싶다는 표현은 그냥 일상적으로 내뱉는 푸념 정도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에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대한 무관심 속에서 노인자살률과 함께 빈곤율 까지 1위로 올라섰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빈곤율 2위의 나라와는 2배가 높다 하니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 수많은 세금을 쓰고 있어도 빈곤율이 다른 나라들이 근접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의 인생에서 마지막이 행복하고 즐겁고 장래의 소망으로 가득하다면 이 보다 복된 삶은 없을 것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사람은 그래서 늘 마지막 때를 생각하며 지금의 삶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봉사하며 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노인의 삶의 질을 생각하며 이번에는 우리주변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노인자살에 대해 연구해보았다. 그 주원인은 우울증으로, 노인들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 자살에 대한 충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이분들은 충동적으로 자살하기보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자살성공률도 높아서 더 위험하다고 전문의는 말한다.
자살은 시도 전에 힌트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어두운 표정과 우울한 느낌, 활동이나 식사량, 말수가 갑자기 줄어드는 모습, 이유 없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증상이 보이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앞 사례처럼 죽고 싶다는 표현을 직접 하거나 죽음에 대한 표현을 평소보다 자주 할 때, 갑자기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재산 및 대인관계 등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면, 위험신호라고 판단해야 한다.
부모님이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하는 혼잣말을 하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식들에게는 이 말이 걱정스럽고 불편해 외면하고 싶겠지만, 그 짧은 얘기 속에 담긴 많은 중요한 의미들을 살펴야 한다. 많은 자녀들이 하는 실수는 “그런 생각마세요. 아직 건강하신데, 왜 그런 얘기를 하세요?”라고 하며 대화의 기회를 끝내는 것인데, 이런 말은 위로로 들리기보다 오히려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과 고독감을 증폭시키기만 한다. 따라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요즘 마음이 안 좋으세요?” “어떤 일로 그렇게 느끼세요?”라는 질문을 통해 노인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좋다. 노인들에게도 인격과 인권이 있음으로 그분들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의 교육방식에도 그대로 접목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사고를 끌어올리기 위한 질문과 답변 즉, 말하기 기술을 통하여 사색하고 연구하고 깊이 통찰하는 힘을 키우듯 노인들에게도 동일한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시하는 듯 한 말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깊은 관심과 애정 가득한 마음으로 질문한다면, 부모님의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 아래 깔린 ‘내 삶이 더는 의미가 없다. 살 가치가 없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다. 비참하다’ 같은 진짜 감정에 대해들을 수 있다.
사실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은 분명 빈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마디로 해서 그들을 돌보아야 할 세대들의 무관심 속에서 버려지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노인들은 분명 젊은 세대들에게 존경과 공경을 받아야 존재들인데 힘이 없다고 함부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요즘 진보세력들이 말하는 ‘틀딱이’ 이런 호칭들은 노인들을 얼마나 경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노인들에 대한 경멸은 곧 자신들에게 임할 것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들이 그리고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하여’이라는 대목에서 이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아니, 자녀들을 위해 희생해 오신 노인들을 존경하고 공경하여 그 분들의 노후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이 보람 있고 행복하게 마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자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지금의 노인은 젊은 우리의 거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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