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장소에 가장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약속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자칫 게으름을 불러올 수 있다. 시간이 많아 게으름을 부릴 때 오히려 시간이 더 없을 수 있다. 시간이 많다고 해서 그 시간이 다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이 게으름을 위하여 쓰이면 시간이 없는 경우보다 더 못하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바빠 죽겠다’는 말을 자주한다. 아마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하나가 바로 이 말이 아닌가 한다. 맞는 말이 아니다. 시간은 없는 것도 아니고 바쁜 것도 아니다. 시간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공연히 저 혼자 ‘시간이 없다’ ‘바쁘다.’ 한다. 산 속의 암자에서 하룻밤 자 보아라. 새벽에 스님이 치는 운판(雲版)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해 보라. 하루가 그렇게 길고 많은 시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실은 똑같은 하루라는 시간인데도 도심(都心)속에서 살아가는 것하고 산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하고 이렇게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도심 속에서 하루는 시간이 부족한 느낌의 생활이다. 산 속에서의 하루는 시간이 여유가 있다. 이는 자타의 중심의 인식 차에서 오는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시간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시간을 창조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시간은 창조되어야만 비로소 자기만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제주도의 귤도 남쪽에 있는 서귀포 귤이 당도가 더 높고, 서귀포 중에서도 남쪽 지역의 귤이 더 당도가 높다고 한다. 또한 똑같은 귤나무라도 윗가지에 달린 귤이 아랫가지에 달린 귤 보다 더 당도가 높고 맛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귤 하나도 햇볕을 자기 것으로 만든 노력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느냐에 따라 당도와 맛이 달라지는데, 하물며 우리 인가간이야 오죽하겠는가. 프란치스코회 박재홍 수사님은 “시간은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노력의 결실로 존재한다. 내가 나무를 심었다면 나이테 안에 존재하고, 내가 사랑을 심었다면 따뜻한 그대 마음 안에서 시련을 극복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내가 마음을 온유하게 갈고 닦았다면 온화한 언행 안에 존재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면 좀 더 나은 세상 안에 존재하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면 건강 안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허송세월하지 말고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라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고 잠들어 버림으로써 물을 낭비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시간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시대이다.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세탁기, 휴대전화, 자동차…비행기 등은 결국 시간을 줄여준다는 점으로 그 이기의 장점을 축약(縮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중한 시간을 우리의 육체와 물질을 위해 쓰기보다는 영혼과 사랑을 위해 써야 한다. 그래야 시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지 않고, 시간을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나의 것 같지만 실은 나의 것이 아니다. 시간은 신(神)의 것이며, 신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이다. 평안북도 벽동의 농가에서 태어나서 19세 때인 1926년 의과대학도 다니지 않은 사람으로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인 최초로 안과전문의가 되었으며 한글타자기를 발명하여 세종대왕, 장영실, 이순신, 정약용, 지석영, 우장춘과 함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 7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공병우 박사는 ‘시간은 생명이다’가 가훈이었으며 아들에게는 ‘까꾸로(거꾸로)살라우!’라고 가르쳤는데 처음엔 우습게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보니 아버님의 말뜻을 알 것 같다 했다. 언어 연구학의 메카 옥스퍼드대학은 세계의 모든 문자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세계 최고의 문자는 한글’이라고 결론 짖는데 선생이 발명한 타자기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후세인들은 그를 일컬어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라고 칭송하고 있다. 시간을 아껴서 살아온 처절한 삶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격언을 다시 되새기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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