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산골마을에는 반달곰이 자주 출몰했다. 주로 산 아래 첫 집, 토종벌을 치는 외딴 집에 나타나 꿀을 훔쳐 먹곤 했는데, 내가 사는 운서마을에도 여러 번 소동이 벌어졌다. 그 이야기를 올려본다. “아부지이~등 뒤에 곰이야~곰 진짜 곰 곰~”. 그날 승엽이 아부지가 벌 밭 주변에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는데, 아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난을 쳐서 예초기 소리를 낮추고 젊잖게 한소리 했다. “야~아들~드가 숙제나 해~” 그리고 열심히 풀을 베었다. 근데 평소 장난이 심해 양치기 소년으로 찍힌 승엽이가 그날만은 진지했다. 집채만한(?) 반달곰 한 마리가 아부지 등 뒤에서 벌통을 하나 들고 서 있는 걸 보고 소리쳤는데, 야속한 아부지가 돌아보지도 않고 숙제하라고 야단만 치니 열 살짜리 아이는 어쩔 줄 몰랐다. 계속 곰이다 하고 소리치면 아부지한테 혼날까봐 더는 말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곰을 가르키며 쉭쉭~가~가~하니 자상한 아부지가 그래 속아준다고 씨익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코앞에 곰이 떠억 있는 것이다. 한손으로 벌통을 끼고 한손으로 꿀을 줄줄 흘리며 파먹는걸 보고야 자상한 미소가 사라졌다. 근데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곰이 흘리는 그 꿀이 아까웠다니 참말로 못 말리는 농부다. 곰은 그 곰이었다. 세동 할매 집에서 벌통 세 개를 훔쳐 먹고 다음 날 박털보네 꿀을 먹으러 갔다가 털보를 마주쳐 만만찮다고 생각하고 도망쳤는데, 승엽이 집에 꿀이 많고 그 집 주인은 인심도 좋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나타난 것이다. 사실 세동 할매네 벌통은 세 개가 전부였다. 승엽이네는 200통 정도로 엄천골에서 벌을 제일 많이 치는 농가다. 한 해 꿀 팔아 아이 셋 공부시키고 생활비 쓸 만큼 쓰고도 돈 천은 남기는 부자다. 승엽이 아부지는 등뒤에 있는 곰을 보자마자 배가 불룩해졌다. 간이 떨어진 것이다. 흔히 간이 배밖에 나왔다고 하는데 간이 떨어진 승엽이 아부지는 믿을 수 없는 침착성을 발휘하여 하던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온 신경이 곰에게 가 있었지만 곰은 꿀을 먹고 자기는 풀을 베는 게 자연 현상인 것처럼 능청을 떨은 것이다. 곰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마치 못 본 듯 굴었다. 아들은 아부지가 곰을 못 본 줄 알고 계속 손가락으로 곰을 가리키며 쉭~쉭~ 가~가~하다가 안 되겠던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한테 곰이 아부지 등 뒤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야~ 아들~ 니 하라는 숙제는 다 하고 하는 거짓말이가~” 하며 속아준다는 듯이 창밖을 보니 곰과 신랑이 영화를 찍고 있더라고. 어쨌든 승엽이 아부지는 (다리를 후덜후덜 떨며) 풀을 베었고 반달곰은 우째 여기가 내집 같다고 여기며 평화롭게 꿀을 먹다가 신고 받은 공단 직원들이 우루루 몰려오자 감나무 위로 올라갔다.얘기가 길어져 결론만 말한다. 수의사가 와서 나무 위로 도망간 곰을 마취총까지 쏘아 포획하였고 다음 날 승엽이는 곰과 함께 찍은 인증샷으로 학교에서 영웅이 되었다. 아부지가 잡은 거라고 뻥을 쳤다가 뽀롱이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1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