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를 키우고 있는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남매는 친남매가 아니었습니다. 첫아들을 낳은 후 부부는 불임으로 인해 더 이상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 외로워 보이는 아들을 위해 예쁜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남매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오빠 녀석은 엄마에 대한 불만과 여동생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남매 사이에 문제가 생겨 시끄러워지면 엄마는 언제나 동생 편만 들어 주면서 오빠는 윗사람이니 무조건 양보하라고 말하며 오빠를 꾸짖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에는 입양된 동생에 대한 배려로 그렇게 동생 편만 들어주었던 것이지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오빠는 그럴 때마다 동생이 싫어졌고 엄마도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오빠는 엄마가 시장에 간 사이나 집에 남매만 있게 되면 동생에게 괜히 화를 내면서 큰소리 치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고자질 하면 나중에 더 혼낸다고 겁을 주곤 했습니다. 결국 이 남매의 관계는 점점 더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편애가 자녀들에게 얼마나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지 부모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필자의 고종 사촌 형제들이 있습니다. 아들 셋에 딸이 하나였는데 첫째 아들은 고집도 세고 몸도 약하고 부모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지만 둘째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온순하며 부모의 말에 늘 순종했고 아무 문제없이 잘 자랐기에 고모님은 항상 첫째 아들과 둘 아들을 비교하면서 편애를 했습니다. 결국 장성하여 성인이 되어서까지 엄마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형제간의 관계도 회복되지 못한 채 형제간의 우애나 화목함을 보이지 못한 채 각자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그 집안의 장자이면서도 철저히 소외된 채 성숙한 것이지요. 많은 부모들이 이와 비슷한 태도를 취하지만 소외된 자녀의 마음속에 엄청난 상처를 주면서 그의 일생을 열등감으로 괴롭힌다는 사실에 부모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편애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를 성경에서 요셉과 야곱의 경우에서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왜 부모들이 자녀를 편애할까요? 물론 여러 자녀들 중에 특히 관심이 더 가고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자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편애하는 모습이나 느낌을 주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어느 화창한 날 동네 공원 벤치에 동네 아주머니 둘이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침 공원을 지나던 초등학교5학년 형과 3학교 동생이 대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이 집 큰 아이는 참 부지런해요” 라고 말하자 엄마가 “그래요. 하지만 큰 애는 좀 덤벙대는 게 탈이 예요. 그에 비하면 우리 작은 애가 오히려 더 부지런하고 침착하지요. 그래서 저는 형보다 동생을 더 믿는답니다.”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형은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주머니는 바로 자기 엄마였습니다. 큰 상처를 받은 것이지요. 그 날 이후로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큰 아이의 덤벙거리는 습관이 좀 고쳐지기는 했지만 동생에 대한 적개심은 성인이 된 오늘까지도 여전히 남아 형제 사이를 원수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부모의 편애는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분열의 무기입니다. 모두를 마음으로 품고 한없는 사랑으로 서로 하나되는 우리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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