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장맛비에 기분이 요플레 같았는데, 잠시 비 그치고 노오란 백합이 벌어지니 덩달아 입이 벌어진다. 기분이 반전되는데 꽃 한 송이로 충분하니 나도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일 비로 산책을 못해 답답해하다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아내랑 산책을 나섰다. 오늘은 매일 한 바퀴 돌아오는 길을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그동안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항상 돌았는데 오늘은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십 수 년 구시락 재를 넘어 강둑을 거슬러오는 코스로 걷다가 오늘은 무슨 생각에선지 반대방향으로 걸으니 느낌이 새롭다 못해 길까지 낯설어 보인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은 우리 집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지나가는 둘레꾼들을 보면 항상 같은 방향으로만 걷고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둘레길을 만들 때 한쪽 방향으로만 걸으라고 누가 말한 것도 아닌데 한쪽 방향만 고집한다. 아니 다른 방향으로 걸어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는데 밭에서 일하시던 이웃마을 할머니가 이상한 듯 쳐다보시며 한마디 하신다. “날이 저무는데 내려가는 길로 가지 않고 우예 올라가시나~ ” 우예 올라가는 산책길에 오늘따라 돌복숭아 향기가 넘친다. 돌복숭아 나무가 어디 있는지 길에선 보이지는 않는데 단지 냄새로 나는 이것이 복숭아 향기이고 지금 열매가 많이 달렸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평소엔 돌 복숭아 향기 나는 곳이 몇 군데 딱 정해져 있는데 오늘은 산책길 내내 향이 넘친다. 아내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데 흐린 날엔 냄새가 멀리까지 퍼지는 법이다. 특히 시골길은 그렇다. 한번은 잔뜩 흐린 날 산책을 하는데 화장 냄새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구시락재 너머로 어떤 여자가 앞서 가고 있었다. 아마 화장을 진하게 했을 것이다. 복숭아 향기는 강물처럼 넘친다. 향기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자유형으로 씩씩하게 헤엄치고, 내리막길은 배영이라도 하듯 하늘을 보며 휘적휘적 걸어간다. 아내가 안개꽃이라고 우기던 개망초 꽃이 길가에 흐드러지고 주홍빛 원추리꽃이 길 따라 내내 이어진다. 장마철이라 후덥지근하지만 원추리가 자꾸 말을 붙여줘서 산책길은 재미를 더한다. “내 쫌 보고 가슈~ 내일이면 못봉께로 잘봤다 못봤다 후회하지 말고 날 보고 가슈~”하며 원추리가 주홍빛 입술로 말을 걸면 나는 “알앗다 알앗써 내일이면 못볼께 어디 너뿐이겠냐만 그래 일단 너부터 봐주마 왜냐면 나는 니가 좋으니까”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옥수수 수꽃과 함께 옥수수 개꼬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조만간 성칠이 형님네 찰옥수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이어지는 장맛비에 기분이 요플레 같았는데, 비가 그쳐 아내랑 산책을 하고 오니 기분이 뽀송뽀송하다. 엄천강 맑은 물에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반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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