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⑭ 안의면 내동마을(2018년 7월 현재)♧ 하원리 소재 ♧ 세대 91가구♧ 인구 154명(남75, 여79)♧ 농가 70가구♧ 주요농산물 : 쌀, 사과, 고추, 고구마 자연과 전설이 머문 심진동 초입마을 안의 용추는 시원한 폭포와 맑은 계곡, 그리고 용추사 사찰, 용추계곡을 좌우로 기백산, 금원산, 황석산 등의 명소로 유명하다. 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용추에 있는 내동마을로 가려면 안의, 서상이 종점인 버스를 타야 한다. 이후 안의면 소재지에 도착해 안의 버스공용버스터미널에서 서흥여객버스 ‘거창-용추사’ 방면 버스를 타고 마음마을을 지나면 내동마을이 보인다. 함양읍에서 출발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예부터 안의가 현이었을 때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은 주변의 경관이 우수해 ‘안의삼동’이라 불렸다. 내동마을에는 고종 3년(1866)에 세운 심진동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인 심원정이 있다. 심원정은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세운 정자로 정자 앞에 있는 물웅덩이는 자연이 주는 수영장 같다. 심원정에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계곡의 곳곳에 전설과 유래를 적은 현판들이 세워져있다. 현판에는 삼형제바위, 매바위 다양한 매산나소(연못)등 자연의 이야기가 용추계곡 물을 따라 전해지고 있다. 내동마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나무와 맑은 물이 흐르는 지우천의 내동교를 지난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면서 예술문화 마을부터 심원정까지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용추의 자연과 전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내동마을에서 무더운 여름 시원한 휴가를 즐겨보길 추천한다. ● 여름 물놀이 필수 코스! 심원정 내동 마을 회관에서 용추계곡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안내소가 나온다. 안내소 문을 통과하면 바로 공영주차장과 아래로 내려가는 심원정 유원지가 있다. 심원정은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그 후손들이 고종 3년(1806년)에 세운 곳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82호로 지정돼 있다. 심원정은 심진동 입구에 있기 때문에 흔히 심진동 심원정이라고도 불린다. 정자 앞에는 큰 돌이 있으며 돌 아래로 맑은 물이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다이빙하거나 여름철 자연 풀장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물놀이 안전사고가 매년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깊어지는 곳은 특히 위험하다. 따라서 즐거운 피서를 즐기려면 물놀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 수칙을 꼭 지켜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찾는 만큼 관광지에서 나오는 쓰레기양도 만만치 않다. 쓰레기는 정해진 장소에 바로 버려야 하며 자연보호를 위해 모두가 앞장서야 한다. 이에 ‘용추계곡 자연보호 협의회’는 용추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수거해 수거 비용으로 정자를 세웠다. 이는 ‘용자정’이라 하며 매바위가 보이는 위치에 있다. ● 매바위(은신암) 전설 용자 정이 위치한 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절벽에는 매의 형상을 한 큰 바위가 있다. 매 바위의 전설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조 초기까지의 사람이며 이성계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절친한 관계를 시기한 정도전의 꾀에 의해 무학대사가 쫓기는 처지가 되어 몸을 숨을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무학대사는 그 길로 몸을 피하려고 각처를 헤매다가 이곳 안의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학은 경치가 아름다운 심진동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른쪽에 매바위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무학은 매바위가 있으니 틀림없이 꿩 설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주변의 지형을 찾아다니다가 보니 과연 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지형이 있어 그 지형을 찾아서 거기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숨어 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는 무학대사가 숨어 살던 은신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1950년 6.25의 전화로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매바위는 산 중턱에 튀어나온 자연석의 큰 바위 형상이 날개를 오므리고 부리를 아래로 하고 쉬고 있는 매의 형상 그대로다. 누구나 이 바위를 보면 금방 매바위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풀과 나무가 바위 옆으로 자라 매의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매 바위 밑에는 깊고 넓은 소(물 웅덩이)가 있는데 이곳을 ‘매산나 소’라 불린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매바위를 향해 ‘매산나’ 즉 “매가 살아 있나”라고 고함을 치면 암벽에 의해 울림이 되어 ‘매삿나’ “매가 살아 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삼형제 바위 삼형제바위는 우애가 깊은 삼 형제가 부모의 산소를 가기 위해 이곳 계곡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때마침 장마라 계곡물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큰형이 생각 끝에 동생들을 업어 건너기로 작정하고는 우선 막내부터 건너놓았다. 다시 물을 건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마귀할멈의 눈에 띄었고 평소 형제의 우애를 시기하던 마귀할멈이 큰형부터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는 전설이다. 바위로 변해가는 형을 보며 두 동생은 발을 동동 구르며 형을 불렀지만 이미 자신들도 바위로 변해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형제 바위의 현판 아래로 내려가면 계곡물을 띄엄띄엄 가로지른 세 개의 큰 바위가 보인다. ● 내동마을 무릉도원, 효자정 마을 입구 회관을 지나 내동교 인근에는 오래되지 않은 효자 정이 있다. 효자정 주변에는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그늘이 되고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마을의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우스갯소리로 내동 마을 사람들은 그늘이 많고 쉴 곳이 많아 일을 잘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대봉(59) 마을 이장은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좋아서 마을이 빈촌이었어. 마을에 그늘나무가 많아서 놀기가 너무 좋지”라며 농담을 했다. 과거 지우천의 홍수가 난 뒤로 효자정의 위치는 공터로 남아 있었다. 따라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해 효자정을 지었다고 한다. 효자동에서는 ‘동민의 날’이라는 행사를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올해 2회째에 접어둔 동민의 날은 5월 동민화합 한마당을 개최함으로 인해 출향인들을 초청하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행사이다. ● 외박 노인의 나눔 내동마을에는 특별한 제를 지낸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내동마을에 사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 노인을 외박 노인이라고 한다. 아마 내동마을이 고향이 아닌 외부에서 와 바깥 외를 쓰는 외박노인이라 불린다고 한다. 노인은 자식이 없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논을 물려줄 사람이 없어 마을에 논을 기부하고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를 보답하는 의미에서 마을에서는 매년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고 한다. 음력 10월 26일은 노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마을 행사의 날이다.● ‘화려한 골드미스를 동경한’ 하태순 노인회장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결혼을 안 하려고 했어”라고 말하는 하태순(78) 노인회장을 만났다. 화려한 ‘골드미스’의 삶을 동경하고 또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온 하 노인회장의 삶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하노인회장은 7년 전부터 함양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로대학을 다니고 있다. 마을에서는 노인 회장, 경로대학에서는 학생회장까지 맡고 있다. “배움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노인회장은 버스를 타고 경로대학이 있는 함양읍까지 왔다 갔다 한다. 고향인 서상에서 24살에 시집 온 노인 회장은 어렸을 때도 공부의 열정이 남달랐다. 그는 집에서 중학교도 못 가게 하는 걸 진주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쳤다. 그 당시의 진주 여고는 서울대만큼 공부를 잘 해야 했다고 한다. 18살에는 면사무소 총무직에서 공직생활도 했다. 원래는 간호사가 꿈이었다는 노인회장은 부잣집 5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나 여자는 바깥생활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했다. 50살 이후에는 동창회도 참석하고 52살에는 운전면허도 땄다.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한복배우는 기술까지 연마했다는 하 노인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만약에 현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더 큰 인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드러운 그녀의 인상 속에 강인함과 단단함이 보인다. ● 70년 전, 어린아이의 기억 김추남 어르신 내동마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귀촌한 김추남(78) 어르신을 만났다. 3대째 고향에서 살고 있다는 김 씨는 7살 6.25 전쟁을 겪었던 그 당시 내동마을의 이야기를 전했다. 용추에는 산골짜기에 절이 있어 빨치산 세력의 주거지였다고 한다. 낮에는 경찰이 순찰을 다니고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와 마을 주민들을 괴롭혔다. 같은 내동 마을 사람이었지만 빨치산으로 끌려간 사람 또는 경찰이 된 사람 나뉘어 마을 주민들이 서로 갈라졌다. “6.25 사변이 지나고는 동네 사람들끼리 원수가 져 서로 고발도 잦고 아주 아수라장이었어”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빨치산들이 동네 젊은 사람을 잡아가니까 우리 가족은 해가 지기 전에 소를 몰고 집에서 안의 읍사무소나 파출소 근방에 안전한 곳을 오가며 잠을 잤다”고 말했다. 실제로 내동마을에서 안의면 소재지 까지는 무려 5km가량 떨어져 있다. 어린 나이에 이곳을 매일 오가는 길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내동마을에서 면 소재지 까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버스가 없었으니 걸어 다니기가 어려워 제 나이에 졸업을 한 사람이 많이 없다고도 말했다. 또한 지우천의 물이 현재는 가물어 있지만, 과거에는 홍수가 자주 났다고 한다. “강에 있는 엄청나게 큰 돌들이 비가 오면 굴러다녔어. 돌이 굴러가면서 ‘꿍꿍’ 소리가 나는 거야. 그래서 천둥이 치는 것처럼 무서워 잠도 못 잤어” 강 중간에 동 청사(마을회관)와 물레방아 등이 있었고 청사를 지키는 고직까지 갖추고 있는 마을이었지만 홍수로 인해 현재는 흔적도 없다고 한다. 70년 전의 일이지만 그는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취재진에서 설명해 주었다.● 함양 약초 과학관 함양 약초 과학관을 운영하는 백옥금(56)관장을 만났다. 함양 약초 과학관은 2009년에 설립되어 1층과 2층 전시관, 강의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생, 단체, 가족 등의 세미나 공간으로 이용하면서 함양의 약초를 알릴 수 있는 공간이다. 백 관장은 2년째 과학관의 관람객 안내와 정원·건물관리 기획, 교육 등 모든 일정과 관리를 맡아서 한다. 창원에서 귀농해 약초 관련 공부를 하면서 이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내동에서 제일 중요한 건물이 약초과학관이라 말하며 백 관장의 열정 넘치는 설명이 인상 깊다. “함양은 지리산을 끼고 있으니 약초가 대표 작물이에요. 약초는 사람을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하죠. 약초는 영어로 ‘허브’라 표현하는 데 따라서 함양을 힐링의 고장이라 합니다”라고 막힘없이 말했다. 과학관 1층에는 약초의 유래 산양삼이 재배되는 곳 등의 이야기가 있다. 백 관장은 “함양 산에 오면 신발 끈을 고치면 산양삼이 너무 많아 오해를 받는다”며 농담을 했다. 2층 전시관에는 약초의 종류와 효능, 보관, 이용법 또 가장 인기 있는 사상체질 분석기도 있어 약초체험관을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함양 약초 과학관 이용은 무료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하는 날인데 특별한 요청이 있을 시에는 휴관일에도 개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https://blog.naver.com/edaum1962)를 참고하면 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정세윤·박민국·하회영·이혜영·유혜진·차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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