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⑬ 안의면 독자마을(2018년 7월 현재)♧ 황곡리 소재 ♧ 세대 34가구♧ 인구 60명(남30, 여30)♧ 농가 25가구♧ 주요농산물 : 친환경 벼, 곶감, 감♧ 이장 : 정연식 태조도 쉬어간, 넉넉한 마음이 그대로 깃든 곳 독자마을은 약 300년 전 임진왜란을 피해 ‘전주 이씨’가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독자마을 뒤 왼쪽 능선을 ‘장만데기’라 부르는데 장만데기의 조금 외진 곳에 궁당(宮堂)이란 지명이 있다. 궁당은 ‘태조가 쉬어가는 곳’이란 뜻으로 그 당시 태조대왕의 영정을 모시는 귀인이 신당을 꾸렸다고 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전주 이씨의 후손이 영정을 모셨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설로 잊혀져가고 있다. ‘안의현의 자부심만큼 부유했던’ 안의 3부촌인 ‘독자·황대·중동’의 대표마을, 안의면 독자마을! 독자마을의 농경지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옛부터 송이버섯 등 특용작물 재배로 현명하게 영농을 꾸리며 60년대엔 담배를, 70년대는 양잠으로 전환해 80년대부터 수박 농사를 시작,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독자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안의면 소재지에 있으니 지곡방면의 안의터미널행 버스를 타면 된다. 함양에서 출발할 경우 안의터미널 정류장까지 50분정도 소요되며 버스에서 하차하면 거창방면의 서흥여객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독자정류장까지는 약 15분이 소요되며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독자마을을 가리키는 표비석이 보인다. 자! 이제~ ‘독자교’ 다리를 건너 태조 이성계도 쉬어갔던 곳, 독자마을로 떠나보자!독자마을 ‘알·쓸·신·잡’ 정연식 이장 안의면 황곡리의 끝 마을인 독자마을의 초입에는 12자 높이의 우람한 자연석이 버티고 있다. 독자가 쓴 글 고동은 ‘오래된 동네’란 뜻의 글귀가 쓰여 진 비석이다. ‘독자를 지켜 온 사람은 건강하게 백수를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독자마을이 고향인 정연식(65) 이장은 이장경력 4년차로 이곳에서 태어나 학교도 다니고 현재 65년째 살고 있다. “수박·고추·벼농사부터 한우를 키우는 축산업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며 “40대는 부산에서 목수 일을 배워서 한옥기술자로서 여기 안의 시골에서 필요한 목수관련 일도 다 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정 이장은 취미생활로 서예도 즐기고 궁도도 배웠다. 그는 2008년도에 함양농업대를 졸업하고 ‘전국 고추재배우수농가 선발전’에서는 동상도 수상했다. 새마을사업을 추진할 때는 ‘마을안길 정리, 지붕개량, 퇴비정산’ 등 마을 발전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독자마을의 ‘알·쓸·신·잡’ 박사인 정 이장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아닌 독자마을의 번영을 위해 앞장서는 ‘쓸데 있는 박사’로 마을주민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안의현’이라 불리던 시절1970년도 거창군 남상면의 춘전리와 진목리는 원래 안의면에 속했을 만큼 그 당시 안의는 지금과 다르게 ‘안의현’이라 불리며 컸다. 정연식 이장은 “거창의 남상 진목사람들이 안의면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이 고개를 걸어와야 했지”라며 “60년대는 안의시장이 매우 크게 섰거든” 한다. 그 당시 진목사람들이 안의소재지로 향하는 유일한 고갯길을 ‘장판떼기(장만데기)’라고 불렀다. 이 고갯마루에서 좀 외진 곳에 ‘궁당’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 태조가 쉬어간 자리라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궁당’ 터엔 기와 조각, 사기 조각 등 세월의 파편이 묻어나온다. 현재는 궁당터에 갈 수 없지만 군항제라 하여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도 지냈었다. 대부분의 집들이 반듯반듯한 기와집 일만큼 다른 마을에 비해 조금은 넉넉해 보이는 독자마을은 몇 년간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물론 귀농·귀촌인이 해마다 들어온다고 해도 ‘안의현’의 위상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주민들끼리 마을회관에 자주 모여 서로 농사일도 돕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안의(현) 사람들의 자부심’은 잊지 않았다.    사슴농장 안주인 김경순 부녀회장“이게 사슴이라구요?” 사슴이라고 부르기에는 왠지 낙타 정도의 큰 체구다. 다 자라면 소보다 더 크단다. 본지 취재진의 눈에도 소만큼이나 큰 이 사슴을 30마리나 키웠다는 김경순(66) 부녀회장의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진다. “1976년도에 30마리를 키웠죠. 이 사슴은 캐나다산 엘크로 그 당시 새끼 한 마리당 500만원이나 했어요. 거의 ‘소 값’보다 많이 나가서 생계소득으로 괜찮았죠”라고 말했다. 김경순 부녀회장은 22살 때 거창 남상에서 시집와 시아버지의 권유로 사슴 2마리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시집올 때 부산에서 남편이 무역회사를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종갓집 맏아들로 논 3마지기를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운을 뗀 부녀회장은 “농사를 짓다가 담배가게(현재 슈퍼마켓)도 하고 4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한다. 사슴 2마리로 시작해 10년 전부터는 20마리를 혼자 키우다가 지금은 2마리 중 한 마리가 죽어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다. 그 긴 세월동안 마을의 특약작물을 바꿔가며 똑똑하게 삶을 이어온 독자마을 사람들. 인구가 줄어들고 작목이 바뀌던 순간에도, 30마리의 사슴이 한 마리가 될 때까지 한 길만 걸어온 김경순 부녀회장의 삶에 대한 열정과 그 희생에 큰 박수를 보낸다.  수박작목반 이세형 총무“독자마을은 민심 좋지요~ 경치 좋지요~ 범죄까지 없는 살기 좋은 마을로는 안의에서 1등입니다!” 올해로 벌써 귀촌 6년차라는 이세형(61) 수박작목반 총무는 현재 독자마을의 수박농사와 판로(공판장 외) 등 수박관련 일은 다 하고 있다. 원래 고향은 여기지만 이 총무는 서울에서 16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함양의 귀농·귀촌 혜택은 인근 산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 총무는 처음 귀촌지역을 선택할 때 안의가 아닌 다른 지역도 고려해봤다고 한다. “앞으로 함양으로 귀농·귀촌할 사람들을 위해 함양군의 지원혜택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농산물의 가격 탄력성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서 농산물 재배 및 판매 등 ‘타이밍’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농산물 가격선정 시 이런 요인을 감안하는 등 농민들의 마음을 군에서도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독자마을의 수박농사는 노지재배로 1년에 1번 수확한다, 매년 다가오는 여름, 7월25일부터 8월10일 사이다. 수박농사 평균 한해 소득은 약 1억 원에 달한다. 정연식 이장은 효자작목인 ‘수박농가’를 위해 일찍이 수박작목반을 형성하는 등 올해로 3년째 군의 지원도 받고 있다.    독자마을 보호수 수령은 680년이지만 실제는 700년도 훌쩍 넘은, 독자마을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보호수 느티나무. 나무둘레는 5.6m, 수고는 26m이다. 1972년 11월 1일 보호수로 지정돼 오랜 기간 동안 독자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 잎이 일제히 피면 시절이 좋다하여 정원에 동신제를 지내기도 했던 곳, 활짝 핀 느티나무 아래 마을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며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했던 곳. 마을의 안녕을 바라는 그 마음이 아직도 전해진다.‘이런 효부 없네’ 김차석·허홍남 고부“우리 마을 자랑이라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지”라며 만나는 주민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랑하는 독자마을 대표 ‘효부’ 허홍남(69)씨,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효심을 가진 허홍남 며느님을 찾아 가봤다. “우리 어머니는 지금도 신문을 다 봐요~ 한글이든 한문이든 다 읽는다니까요!”라며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시어머니 자랑부터 늘어놓는 허홍남씨의 눈에는 시어머니를 향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친다. 이런 허홍남씨는 젊은 시절 부산에서 살다가 남편의 고향인 이곳 독자마을로 귀향한지 올해로 10년째이다. 그녀의 시어머니인 김차석(95) 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귀도 밝고 눈도 맑다고 한다. “우리 며느리가 어디가면 너무 불안해”라며 며느리 ‘껌딱지’를 자청하는 김차석 할머니는 전주이씨 집성촌인 이곳에 시집와 종부로 살았다. 그 시절 여느 여자들이 다 그랬듯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었다. 옆에서 아름다운 두 여인을 지켜보던 허홍남씨의 남편이자 독자마을의 노인회장인 이종성(72)씨는 “다른 사내들처럼 표현은 못해도 늘 옆에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마지막으로 지금도 건강히 우리와 함께 해주신 어머니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이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정세윤·박민국·하회영·이혜영·유혜진·차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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