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좀 더 드릴까요?”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시장초입 허름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두부를 기름에 살짝 튀겨 양념장을 얹은 것이 하도 맛이 있어 밥도 뜨기 전에 접시를 비웠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생각지도 않은 서비스를 자청한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두부가 비쌀 텐데요”하니 “맛있게 드시면 고맙지요”라며 수줍어하는 모습이라니...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와 농협에 들렀다. 책임자가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낯선이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친절하다! 귀촌하면서 농협이라는 조직에 대해 갖게 된 막연한 반감이 사라졌다. 낯선 동네에서 모처럼 받은 “고객님”대접에 기분이 매우 유쾌해졌다.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이렇듯 친절은 배려와 관심 같은 정서적 언어였는데 자본과 시장이 무한경쟁을 유발하면서 비용을 발생시키더니 비싼 포장재처럼 되어 버렸다.
1970년대 중반, 문턱만 높던 은행이 손님을 “고객님”이라고 부르면서 CS(Customer Service)를 시작했다. 은행은 상품이 아니고 서비스를 파는 곳이고 그 서비스의 품질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고객응대 매뉴얼을 만들고 수시로 서비스실태조사를 하며 품질향상에 노력했다.
80년대 등장한 고객만족(C stomer Satisfaction)은 선거 때 하는 출구조사 처럼 방문고객에게 서비스에 대해 묻고 여러 방법으로 만족도를 지수화 하여 타지점과 비교하고 경영평가에 반영했다. 전문 조사기관이 만들어지고 은행들의 고객만족도 순위가 발표되자 CS는 경영진의 최대관심사가 되었다. 90년대 들어서서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업그레이드된 CS가 고객감동(Customer Surprise)이다. 서비스가 고객이 깜짝 놀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은행직원이었던 필자가 퇴직할 무렵에는 서비스로 고객을 졸도시켜야 한다는 “고객졸도”라는 말이 등장한다.
관공서, 상가, 병원 등 각 분야로 CS라는 서비스 무한경쟁이 퍼져나가게 되었는데 기업의 비용과 효용이라는 경제논리야 논외로 하더라도 정작 문제는 그 서비스(친절)가 전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이런 서비스에 익숙해진 필자의 함양살이 대강 짐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 반찬이 더 먹고 싶어도 참고, 약국이나 병원에서 000씨, 또는 저기요라고 부르는 소리에도 익숙해졌다. “좀 비싼 것 같네요”라고 했다가 “그럼 싼데 가서 사세요”라는 답을 들은 후에는 절대 물건 값을 흥정하지 않는다.
다만 금융기관에 들어서면 직업병인지 제멋대로 직원들의 서비스 실태조사를 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어도 지적하는 일은 꾹 참는다.
구인난에 치솟는 인건비와 원재료 값은 외면하고, 지방 특유의 무뚝뚝함과 투박함, 처음 보는 이에 대한 낯가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함양은 불친절하고 비싼도시”라는 선입견이 머리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니 이해도, 포기도 하게 되었다. 늦은 시간에 찾아온 벗을 데리고 불 켜진 식당을 찾다가 “끝났는데요.라는 말에 돌아서기를 세 번, 친구 놈이 “이런데서 어찌 사노?”라고 묻는다. “공기가 얼마나 좋은데, 하기는 ”님“이 ”씨“가 되긴 했지만..”하고 웃어 넘기고, 간혹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참 좋은데 조금 불친절한 것 같아요, 물가도 비싸고요”라고 말하면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해 준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함양은 항노화의 수도를 꿈꾸고 있다. 6차산업과 귀농귀촌, 엑스포를 말하면서 변화(Change), 무한경쟁(Competition), 고객 중심(Customer)이라는 테제를 피할 수는 없을 터, 결국은 함양의 경쟁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함양이 “서울의 강남”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리적 여건과 천혜의 자연환경은 강남을 능가하지만 물가가 조금은 비싸고, 행정, 금융, 의료서비스는 부족하다. 지금은 우리 함양의 친절도(CS)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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