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월드컵 기간이 되면 경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우리나라의 경기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번 월드컵도 객관적으로 이미 드러난 것으로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의 실력이 뒤지는 것이 기정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보게 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여름행사가 있어서 200명이 참석하였는데 낮에는 강의를 듣고 밤에 강의실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여 100여명이 모여서 스웨덴과의 첫 경기를 관람하였다. 평가전을 통하여 보여 준 무기력한 모습 때문인지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승리한다는 기대보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작하기 전부터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았다. 때때로 들려오는 탄식소리와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래도 휘슬이 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골을 고대하는 마음은 모두가 동일한 것 같았다. 우리나라 선수가 공을 잡으면 슛! 슛! 하였고 제대로 슛을 하지 못할 때에는 아~ 아~ 하는 아쉬움의 탄식소리가 이어졌다. 그래도 중간에 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이 모두가 끝까지 지켜보았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기에... 경기가 다 마치고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나서야 일어나서 나가는 뒷모습들을 보니 왜 그런지 어깨가 처져 보인다. 물론 누구보다도 가장 이기고 싶은 사람들은 경기를 뛴 선수들이었을 것이고 가장 이기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도, 그리고 경기의 결과에 가장 가슴 아픈 이들도 선수와 감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경기에 져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경기가 있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박수를 쳐야 할 손바닥이 애꿎게도 책상을 치고 일어났다.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나이가 52인데 요즈음 축구를 배우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 선수를 했던 사람이 일주일에 한두 번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가르쳐 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기에 사실 엄청나게 축구를 많이 했다. 경기도 셀 수 없이 많이 하였다. 시골에서 8.15 광복절 기념 축구대회에 마을 대표로 참석하여 22개 마을이 출전하여 2일 만에 우승자를 가리는 대회에서 우승도 몇 번 하였다. 하지만 축구를 제대로 배워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냥 운동장을 뛰어 다니면서 신나게 공을 찼다. 내가 맡은 포지션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비였기 때문에 지금도 드리블 기술이나 상대방을 제치고 슛을 하는 공격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수비수의 역할은 일단 우리 편 지역에 들어온 공을 멀리 차 내는 것과 상대편 공격수를 놓치지 않고 찰거머리같이 끝까지 따라 붙는 것 두 가지였다. 적은 체구이지만 순발력과 승부근성이 있어서 역할을 잘 소화해서 나름대로 공을 잘 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초등학교 때 실력이나 대학교 시절이나 지금의 축구하는 기량이 크게 나아진 것도 없고 퇴보한 것도 없다. 거기서 거기이다. 왜냐하면 축구에 대한 이론을 배워본 적도 없고 실제 기술을 익히고 훈련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늦은 나이에 축구를 배우면서 경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야가 크게 넓어졌다. 나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이젠 몸이 둔해져서 기술을 익히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진작 이런 것들을 배웠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늦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우선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 체질이 굳어져서 고치려고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무리하게 축구를 익힐 이유도 이제는 별로 없다. 그럴 시기가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이렇게 모여서 축구를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을 하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올 봄에 체육대회 축구팀으로 참가한 적이 있는데 첫 경기에서 져서 탈락하였다. 준비되지 않은 채 참석하였다가 경기장에 들어서서는 허둥대다가 경기를 지고 마친 것이다. 경기를 뛴 선수들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맥이 빠지긴 마찬가지였다.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그랬던 것이다. 연습다운 경기도 해 보지 않고 경기 당일 날 참석한 사람들을 모아서 포지션을 정해주고는 어떻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쩌다 가끔 한 번씩 다른 팀이 더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런 것이 먹혀 들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늘 경기다운 경기를 해 보지도 못하고 패하니까 그렇게 힘이 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왕 해마다 참가할 거면 제대로 준비를 해서 참가하자는 의견이 모아져 쉽지는 않지만 매 주 한 번 이라도 모여서 연습을 하게 된 것이다.어쩌면 우리들 속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땀을 흘리지 않고 열매를 거두려는 습성이 삶의 요소요소에 깊숙이 베여 있는지 모른다.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듯이 그런 결과를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혹 살아가다 보면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땀을 흘린 만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원인이 무엇인지 진단하고 그것을 고쳐나갈 때 한걸음 더 발전할 수가 있다. 나 혼자 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축구는 2002년 월드컵 이후 그 이전보다 나아진 것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해외로 진출한 선수들은 그 이전보다 많은데 전체적인 실력은 오히려 후퇴한 듯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우리의 상태를 마냥 비난하면서 뒷짐 지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하고 감수할 것이 있다면 감수하고 또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동시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한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유독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한편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그래도 여기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실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의 물결이 조금씩 일렁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주어진 기회를 붙드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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