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저녁으로 감자 고로케를 만든다며 주방 보조 일을 시킨다. 프라이팬에 돼지고기 갈은 것을 익혀라, 야채 썰은 것을 볶아라, 타지 않게 저어라, 골고루 잘 섞어라, 계란 풀어라...... 이런저런 일을 시키고 정작 본인은 TV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드라마 재방송을 하필이면 왜 이 시간에 하는 건지 나로서는 유감스럽지만 시키는 대로 해보니 생각 외로 재미가 있고 다음엔 혼자서도 감자 고로케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혼자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는 따로 삶고, 돼지고기 갈은 거 익히고, 당근, 피망은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볶은 뒤 모두 섞는다. 그리고 계란을 풀어서 반죽을 끈기 있게 해주는데 이 계란은 양 조절이 중요하다. 나는 두 개만 넣어도 될 것을 양 조절에 대한 감이 없어 네 개를 넣는 바람에 반죽이 너무 물러져서 고로케 모양을 성형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아내에게 망했다고 보고하니 쳐다보지도 않고 빵가루를 입히라는 처방을 해주고는 다시 TV속으로 들어간다. 근데 나는 임기응변으로 빵가루에 감말랭이도 잘게 썰어 넣었다. 감자 고로케에 감말랭이를 넣는 것은 아마 인류 요리사에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을 것이다. 과연 어떤 전위적인 맛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기름에 튀겨 먹어보니 감말랭이를 너무 적게 넣었나보다. 실패할까봐 그리고 처방전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혼날까봐 소심하게 넣다보니 감말랭이는 가물에 콩 나듯 씹히고 넣은 건지 안 넣은 건지 아내는 모른다. 가끔 한 번씩 말랭이가 씹히는 식감이 쫄깃하고 좋은데 말이다. 과감하게 좀 많이 넣었어야 했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이게 밥반찬이야? 간식이야? 하며 맛있게 먹고 산책을 했다. 산책길엔 미역취 향기가 넘친다. 노오란 안개 같은 미역취 꽃이 군락을 이루는 산책길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달콤한 향기는 걸음까지 멈추게 한다. 아내는 코를 흠흠거리며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은데 이름이 하필 미역취야?”하고 한마디 한다. “이름에 취가 들어가 있으니 먹는 나물인 모양이다. 미역 맛이 나서 그런가?” 하고는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 어린잎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거란다. 이맘 때 산책길에는 미역취나 엉겅퀴, 원추리 같은 야생화도 눈길을 끌지만 길옆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산딸기를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내는 산딸기를 한줌 손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따고는 내일은 봉다리를 하나 가져와야겠단다. 저녁 먹고 배를 두드리며 걷는 산책길이지만 산책길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산딸기는 도무지 사양할 수 없는 후식이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엔 살구가 막 떨어지고 있다. 내가 사는 운서마을은 옛날부터 살구나무가 많아 살구마을로 불렸다 한다. 세끼 밥 먹기 힘들었던 시절엔 집집마다 살구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서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어주었는데 산업화 시기에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나간 뒤 한 때 이 살구는 먹어줄 사람이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무도 먹지 않는 살구가 떨어지면 마당과 골목이 지저분해진다고 아름드리 고목을 베어버리는 집도 많았다. 다행히 십여 년 전에 마을에 뜻있는 사람 몇 명이 나서서 더 이상 살구를 베지 못하게 하고 정부지원을 받아 살구나무 2천 그루를 심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을 구석구석 살구나무가 자라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피는 봄이면 온 마을이 꽃 대궐이 된다.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빠져버렸지만 그 때 마을에 살구나무를 심은 뜻있는 사람 중에 유진국이라는 자칭 곶감 명장도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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