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시원합니다. 가뭄이 계속된다고 알리는 전령사 ‘피죽바람’입니다. 오랜 기간 불면 피죽도 먹기 힘들다고 합니다.
새집을 짓고 한쪽에 5년 된 머루덩굴나무 한그루를 심었습니다. 머루를 심기 전에 깊게 파놓은 구덩이 바닥에 자갈을 넣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뿌리 침수를 막는 배수 역할도 하지만 반대로 물을 모으는 구덩이가 되어 가뭄에 물을 공급하기도 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그늘은 파고라를 덮으며 넓어지고 머루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미리 봅니다. 머루는 가뭄이 와도 뿌리 아래 있는 자갈수조에 발을 담가 옛 이야기 하며 뜨거운 여름을 지낼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템스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정원에 유명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 맛이 특별하여 식물학자들이 종자를 채취하여 재배시험을 하였지만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에 가뭄에도 물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좋은 양분을 흡수하여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깊은 생각이 맛있는 열매를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 함양 고을에는 머루가 자랍니다. 오래전부터 40여 농가에서 재배하여 연100톤가량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포도속屬 중에서 머루, 왕머루, 포도는 식용할 수 있고 새머루, 까마귀머루, 개머루는 식용 가치가 없습니다. 이중에 까마귀머루의 원산지는 우리나라입니다. 우리가 흔히 머루라고 부르는 것은 머루와 왕머루인데 잎의 뒷면에 적갈색 털이 있는 것이 머루이고 털이 없으면 왕머루입니다.
머루는 까마귀의 머루란 뜻의 ‘영욱蘡薁’이란 옛 이름처럼 산새들의 먹이가 됩니다. 입에 넣고 깨물어 보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고 익을수록 단맛이 있습니다. 오래전 고려시대에 크고 맛이 좋은 포도가 들어오면서 머루는 잊혀져가지만 요즘 옛정취와 기능성 음료로 널리 보급되고 있습니다.머루는 덩굴로 뻗어가는 나무인데 줄기가 10m 이상 자랍니다. 초여름에 원뿔모양의 여러 꽃이 피고 나면 바로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여 가을에 새끼손톱만한 까만 열매가 익습니다. 산기슭이나 계곡 사이의 숲 속에 자라며 해발 100∼1,650m 사이에 분포합니다. 머루는 암수가 다른 나무이므로 재배종은 암그루를 영양번식을 하여 모두 열매가 열리지만 종자로 번식하거나 자생하는 것 중에 열매를 맺지 않은 머루나무도 볼 수 있습니다.
머루순은 무릇과 둥굴레의 뿌리와 함께 고아 먹는 구황식 재료였습니다. 과실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생혈과 조혈작용 그리고 이뇨작용을 합니다. 신경세포를 만드는 신경효소의 활동과 효능을 증진하여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의 퇴행성 질병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려가요 ‘청산별곡’처럼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 수 있나 봅니다.
24절기 중에 아홉 번째인 망종芒種이 지났습니다. 곡식의 씨를 뿌린다는 망종에 비가 오지 않아서 올해 더위와 가뭄을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머루나 포도나무는 가뭄과 무더위를 잘 견딥니다. 이유는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전국 열풍이 불어오는 유월입니다. 함양고을의 나무들이 네거리에 서서 인사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큰 나무는 살면서 뿌리내리기를 게으르지 않습니다. 맛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눠줍니다. 필요한 곳에 쓰이게 됩니다. 가진 것으로 자족하기에 더욱 싱그럽습니다.
머루의 깊은 생각은 지리산 자락의 물레방아골에서 평안과 힐링의 그늘을 얻는 사람들의 정수淨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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