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8 수동면 도북마을(2018년 5월 현재) ♧ 도북리 소재 ♧ 세대 98가구♧ 인구 198명(남94, 여104)♧ 농가 85가구♧ 주요농산물 : 사과 ♧ 이장 : 권길현 상흔 딛고 활짝핀 사과향에 행복이 가득 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도북마을로 가려면 수동방면 제전이 종점인 버스를 타야 한다. 함양에서 출발하면 40분 정도 소요된다. 도북은 한 길의 북쪽이라 해 도북이라 불린다. 수동면사무소를 지나 북쪽으로 쭉 더 들어가면 하교마을이 보인다. 하교마을에서 내릴 채비를 하면 제일 먼저 사과모형이 보이고 도북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도북마을은 버스정류장도 사과모형이다. 또 과즙 공장이 눈앞에 있어 이 마을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준다.사과 대표 마을답게 ‘도북사과행복’은 마을에서 빠질 수 없는 고유명사가 됐다. 4월에 피는 사과 꽃은 지고 파릇한 사과나무들이 줄을 잇는다. 도북 마을에는 50여 개의 사과농원이 마을 지도에 표시되어있다. 그만큼 사과 농사를 많이 짓는다. 예부터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마을에 냇물이 잘 흐르지 않았다. 농사는 가뭄으로 흉년이 계속되었고 마을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어렵게 살았던 도북마을은 박씨라는 사람이 처음 사과나무를 심었다가 현재 수동면사과축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용재씨가 사과나무를 심어 마을에 보급하면서 고소득을 올리게 됐다. 도북마을은 하나의 분지로 형성되어해발 300~400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때문에 강수량이 적고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해 도북마을 사과는 당도가 높고 향이 좋기로 유명하다. 지금은 마을의 80% 이상이 사과농사를 짓는다. 사과 농사로 인해 마을이 점점 더 잘 살게 되고 흔히 말하는 ‘자식농사’도 성공했다. 사과를 이용한 마을 특성화 축제로 마을은 성장하고 2015년에는 ‘행복마을 콘테스트’에도 선정됐다. ‘행복’은 긍정 힘, 도북행복마을 선정 ‘행복’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느낌을 전해준다. 긍정적 사고는 긍정적 행동을 이끌어 내고 긍정적 태도는 목표 성취를 위한 추진력, 잠재력을 끌어낸다. 이 말의 대표 사례가 도북 마을이다. 도북마을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긍정의 힘을 불러일으켜 ‘승승장구’하고 있다. 도북마을은 2015년 9월에 개최한 ‘제2회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부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았다. 지난 2017년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공모사업 창조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총사업비 5억 원을 지원받은 상태다. 사업비는 사과축제 기반조성과 홍보를 위한 잔디광장 및 야외무대 조성, 다목적 광장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대단한 일들을 한 번에 이룬 것은 아니다. 2014년 ‘제1회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 먼저 참여한 적이 있지만 예선은 통과하고 본선에서는 탈락했다고 한다. 한 번의 실패를 딛고 제2회에서 당당히 최종 우승을 거둬 마을의 행복한 미래만 남아있다. 콘테스트 수상뿐만 아니라 도북마을 주민들의 단합은 또다른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다목적광장 부지 구입을 위해 자금이 부족하자 도북마을 사람들은 모금을 진행했다. 30만원부터 50만원, 100만원... 한마음으로 모금한 금액은 부지를 구입하고도 남았을 정도다. 도북마을이 얼마나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곳인지 알 수 있는 반증이다. 도북마을 주민들이 이렇다 보니 귀촌하는 사람들도 한 마음이 된다. 특히 부산소재 대표적 선박안전설비업체인 ㈜한영기업을 운영하는 김상일씨는 도북마을 뿐만 아니라 함양군에서도 알아주는 선행천사다. 크고 작은 사회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어르신들에게도 아낌없는 지원을 해 주고 있다. 수동사과축제 ‘수동사과꽃축제’는 수동면 도북마을(수동사과축제위원회위원장 권용재)의 주관으로 진행된 함양군의 대표 봄꽃 축제이다. 2014년 4월부터 열리던 ‘수동사과꽃축제’는 지정 부스와 메인무대에 공연과 전시·체험·판매행사 등이 다채롭게 진행해오고 있다. 특히 사과 길게 깎기와 사과 빨리 먹기 대회가 많은 인기를 끌며 사과컵케이크·사과피자 만들기 체험 등 다양하게 마련했다. 이 모든 행사는 마을 주민들이 매년 밤낮으로 의논하여 구성했다고 한다. 또 축제 기간에는 부지런히 마을의 일손을 거둔다. 손님맞이하기 위한 환경 정화부터 마을 꾸미기, 음식 서빙 등 함께한다. 권운현(72)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에는 첫 번째 인심이 제일 좋고 화합이 잘 됩니다. 그게 제일 자랑거리라요. 그래서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나서서 돕는다”며 자신도 축제 기간에는 음식 나르기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2014년 4월부터 열리던 ‘수동사과꽃축제’는 올해부터 ‘수동사과축제’로 이름을 변경하고 개최 시기도 10월로 조정했다. 제철 사과도 맛보고 다양한 사과체험을 즐길 수 있는 도북마을로 여행 계획을 세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당 道東精舍(도동정사) 마을회관 뒤쪽에는 공원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있고 그 나무들이 공원을 둘러싸 완전한 그늘이다.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게이트볼도 치고 쉬어가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이곳은 옛날 마을의 서당으로 선비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내부에는 건립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한문으로 빼곡히 적혀있다. 예부터 협동심이 강했던 도북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권 노인회장은 “옛날에는 여기서 공부해 잘 된 사람이 많아요. 박사 출신도 있고 서울에 권해윤 씨도 있었는데 다 우리 권씨 집안이에요”라고 자랑했다. 대표적인 인물 권해윤(62) 씨는 도북마을 출신인 전 서울시 국장으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제2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북마을 권운현 노인회장 마을에 대한 자랑이 한창이던 중 노인회장의 휴대전화에 벨이 울렸다. 1남 3녀 중 아들이 전화가 왔다. 수동농협에서 일하고 있다는 외동아들은 가까이 있는 아버지를 끔찍이 챙긴다. 사과 열매를 솎아낼 시기라 아버지가 힘들진 않은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 물어온 전화이다. 권 회장은 저장 기간이 긴 홍로와 당도 높은 후지(부사)를 가족끼리 도와가며 3000평 정도 짓고 있다. 농원의 이름도 ‘행복농원’이다. 세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와서 농사일을 도와주기 때문에 걱정 없다고 한다. “큰딸은 아들 둘 딸 하나, 둘째는 아들 하나 딸 둘, 셋째는 아들만 둘, 아들은 딸 하나” 시집·장가 다 보낸 자식들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됐다. “다들 거창, 진주, 수동에 가까이 살고 있어 전화도 자주 하고 농사일도 도우러 자주 찾아온다”며 그야말로 농사 중에 가장 어려운 ‘자식농사’도 성공한 것이다. 함께하는 느티나무 마을의 입구에서 조금 내려가면 옛 도북초등학교가 보인다. 지금은 폐교가 돼 개인 농원으로 바뀌었지만 권 노인회장의 기억 속에는 어릴 적 추억을 쌓았던 초등학교가 생생하다. “저기가 내 초등학교였어요. 여기 사과나무 있는 곳은 운동장이었고 여기서 친구들과 뛰놀고 이 느티나무는 그때도 지금처럼 엄청 컸어요” 하나의 큰 느티나무로 보였던 나무를 가까이에서 보니 3그루의 나무가 따로 있었다. 300년 정도 된 나무로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 또한 마을의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줄기에서 자라난 3그루의 나무를 멀리서 보면 하나의 모습으로 어울리고 있다. 도북마을이 살아가는 행복의 비결은 혼자가 아닌 함께 잘사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작은 나무가 모여 큰 나무를 이루듯 작은 노력이 모여 큰 행복을 이뤄가는 도북마을의 모습이다.1994년 3월 1일 자로 수동국민학교로 통합되어 폐교되었지만 동창생들은 이곳을 찾아 동창회를 한다고 했다. 옛날만큼 쉽게 오지 못하는 이곳을 오랜만에 들려 회장님도 들뜬 모습이었다. 나무들을 만져보고 정원을 구경하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효자비 마을에는 무려 3개의 효자비가 있다. 여흥민씨와 은진송씨, 진양강씨 효자비다.권운현 노인회장은 이중 여흥 민씨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여흥 민씨(驪興 閔氏)는 경기도 여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역사적 인물에는 명성황후(민비)가 있다. 민씨의 후손인 여인이 안동 권씨와 혼인을 하여 도북마을에서 살았는데 6.25한국전쟁 때 남편이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홀로 된 민씨는 길쌈을 하여 돈을 벌어 머슴을 거느리며 100마지기(2만평) 논을 지으며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함양 양민학살위령제가 열리는 마을 함양 민간인 학살은 1949년부터 50년 사이 지리산 인근에서 활동 중이던 빨치산을 도왔다는 명분으로 80여명 이상의 지역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 특공대 등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당시 민간인 학살은 함양지역 9개 읍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으며 총칼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부역을 한 민간인은 물론 보도연맹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행됐다. 사건이 발생한지 60년만의 진실 규명으로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민족역사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희생된 유족이 명예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앞장선 사람으로 함양군먕민학살희생자 유족회 차용현 회장을 빼 놓을 수 없다.함양지역에서 학살당한 이들은 민간인 86명을 포함해 보도연맹 등 181명. 일가족이 희생당해 연고가 없거나 유가족이 밝혀지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300여명이 넘는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1992년 1월18일이 돼서야 합동 묘역이 조성되고 위령비를 제막했다. 합동묘역은 도북마을 건너편에 작게 만들어졌다. 사건 발생 후 43년 만에 첫 추모제를 지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유족들이 1년에 한번 모여 제를 지내고 있다. 님들이 뿌린 씨앗 단비 없이 자랐도다해 가고 눈서리 져도 피고 지고 또 피나니한 맺힌 가슴 도려 산 넘어 내던지고세세연년 아픔 펴고 고이 잠드소서 <도북유족회시> 출처 -주간함양 아픔의 역사 함양 양민 학살 사건을 말한다 정세윤·박민국·하회영·이혜영·유혜진·차혜진 기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