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함양에 매주 보내는 칼럼<지리산농부의 귀농이야기>를 깜박 잊고 있다가 원고 마감이 임박해서 생각이 났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 옛날 홈페이지를 뒤져 수년 전 이맘 때 쓴 글을 하나 찾았다. <붓꽃>이라... 올커니~ 이거 보내면 딱이네. 금방 쓴 것 같네~했는데 글 끝머리에 남편 어쩌구 저쩌구 하는 내용이 헐~ 이건 아내가 쓴 글이다. 내가 쓴 건줄 알았는데 우째 이럴 수가~ 같이 살다보면 부부는 손가락까지 닮아가나 보다. 할 수없이 최근 카스에 올린 스토리를 이리저리 급 짜깁기해서 <귀농이야기150 / 오월>이라고 보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주간함양에 얼렁뚱땅 보낸 칼럼이 150개나 된다. 3년째 글을 보내다 보니 계절 따라 반복되는 시골이야기 이젠 더 이상 새로울 거도 없지만, 한편 원고료가 유니세프 영양실조치료우유 한 봉지로 바뀐다는 생각에 재미없으니 그만 보내라 할 때까지 보내고 있다.
<붓꽃> 초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인 붓꽃이 하나둘 피고 집니다. 이 붓꽃은 한순간 모두 만개해서 사람들을 ‘와~~와~~’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한 송이 피어서 ‘음~ 피었구나. 근사해!’하며 마치 독대를 벌이듯 핍니다. 그러다 지고 또 다른 송이들이 피고, 어쩌다 한꺼번에 만개한 듯 보여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져버린 꽃들이 핀 꽃들만큼 많습니다.
한순간 확 피었다가 한순간 훅 져버리는 철쭉이 가고나면 이젠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우리 집 마당엔 여름 꽃들이 피고지기를 반복합니다. 장미, 으아리, 꽃양귀비, 작약, 한련화, 디키탈리스, 해바라기... 이런저런 꽃들이 많아 다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집을 막 지었을 때, 화단에 심을 꽃이 없어 이웃에게서 얻어온 금잔화를 잔득 심었던 일이 기억 저편에 있습니다. 다양한 꽃들이 자리 잡기까지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중략)
이젠 성인이 된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보다 재빨리 디지털 세상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태고적 흐름인 아날로그적 방식보다는 디지털 방식을 선호합니다. 아날로그적인 물리적 현상들은 아이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물리적 세상에 없는, 상상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에 열광하죠. 상상 속에서 이 디지털로 못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아바타’, ‘어벤져스’ 등등 아이들은 이런 류의 영화를 고르고 우리부부는 로맨틱 코미디 쪽을 고르고... 가끔, 이런 디지털이 가미된 스토리가 신선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감나무 밭과 블루베리 밭에 잡풀을 잡으려고 오래 동안 작업해서 깔아 논 멀칭이 위기에 처함. 바람에 일어나 확 뒤집히면 도루아미타불! 남편은 급하게 밭으로. 잔디를 서서히 점령해 들어가는 가늘디가는 잡풀을 찾아 빼내며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이렇게 힘들게 잡풀과 멀칭과 씨름하지 말고 디지털 방식으로 순식간에 말끔히 해결? 영화 속 장면이 되어서. 어떻게는 모르겠고... 아~~~.
오래되고 치열한 생명활동이 가장 왕성한 여름의 시작, 이곳에서 우린 10여 년간 간신히 익숙해진 여름을 다시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과 달리, 저 붓꽃은 참으로 찬란한 모습으로 여름을 맞이하고 있네요. 우리가 저 붓꽃을 어찌 닮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바라만 보고 감탄하고 조금은 시기도 하고, 저 보랏빛 같은 허영을 상상력으로 잠깐 꿈꿔 볼 뿐.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