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구야~ 잘 지내나?” “웅~ 잘 지내” “니도 잘 지내제?” “그래~나도 잘 지내” 지리산 자락에 사는 나는 서울 사는 친구랑 오랫만에 통화하고 “그럼 잘 지내~”하며 끊는다.
친구도 잘 지내고 나도 잘 지내고 있다. 근데 친구가 잘 지내는 거하고 내가 잘 지내는 거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다. 공무원인 친구는 행정부 높은 자리에서 별 탈 없는게 잘 지내는 거고, 지리산 골짝 높은 자리에 사는 나는 마당의 꽃과 나무랑 잘 지내고 있는 게 잘 지내는 거다.
“그래~ 칭구야~ 벌써 오월이네~ 나 요즘 (장미랑)잘 지내~” 내가 오월에 잘 지낸다는 거는 장미랑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나에겐 장미 스무 그루가 있다. 십 수 년 전 시골 장 구경하다 덩굴장미를 세 그루 사다 심었는데 한 두 해 만에 꽃이 어찌나 풍성하게 피던지 장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향기도 은은하고 꽃도 여러 번 피어서 장미를 보기만 해도 내 인생이 장미 빛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한 그루 두 그루 더 심다보니 어느 해부턴가 집이 장미로 둘러싸여 버렸고 나도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오월 초순이라 아직은 장미가 몇 송이 피지는 않았지만 꽃봉오리는 엄청 달렸다. 올 봄 흡족하게 내린 비로 먼저 핀 꽃나무들도 대박 났었는데 장미 역시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아침에 눈 뜨면 장미부터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올 오월은 내가 조금 더 잘 지내게 될 거 같다.
어버이날에 두 아들이 선물은 커녕 하다못해 문자하나 없다고 아내가 섭섭한 마음에 뿔난 도깨비 이모티콘을 날렸다. 그랬더니 큰 아들은 ‘??’ 라는 답변이 왔고 작은 아들은 ‘왜?’ 라고 리플라이. 아내는 점심을 먹으며 딸을 낳지 못한 걸 후회했다. 신혼 때 부평에 살았는데 산부인과 이름이 김덕남 산부인과였다. 박득녀 산부인과로 갔어야 했는데 김덕남 산부인과로 가는 바람에 그래 된 것이다. 그 때는 그래도 아들 낳았다고 좋아했는데, 또 아들이 나오길래 나쁘지 않네~ 했는데, 이래 될 줄이야... 아내가 섭섭한 마음에 나물이나 뜯으러 가자고 한다.
오월의 산나물은 취와 고사리다. 산에 올라가니 과연 취와 고사리가 지천이다. 언제부턴가 산나물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그동안 이 고마운 자연의 선물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부지런한 동네 할머니 나물보따리로 다 들어가고 우리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물 캐기의 달인이신 할머니들이 한분 두 분 세월 따라 고개 넘어가시고 아직 살아계시는 분들도 기력이 딸려 더 이상 산에 오르지 못하니 나물이 흔해진 것이다. 아내와 내가 허리 숙여 부지런히 손을 놀렸더니 금새 나물보따리가 가득이다. 아내는 산에 오를 때만 해도 입이 나왔었는데, 나물보따리가 가득하니 섭섭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취나물을 맛나게 무쳐 서울에 있는 큰 아들에게 부쳐주겠다고 한다. 그래~ 산나물 덕분에 아내도 오월을 좀 더 잘 지내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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