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버스 여행기 ‘1250원의 행복’ - 3당신의 주머니에서 딸랑딸랑 동전소리가 들립니까? 주머니에서 꺼내 든 돈이 1250원만 된다면 떠나십시오. 농촌시골버스가 당신을 함양 어디든 데려다 줄 것입니다.지리산함양고속에서 운행하는 농촌시골버스는 22개 노선. 농촌시골버스는 함양 11개 읍면 작은 마을 곳곳을 누빕니다. 지리산 청정골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그들의 삶속에 묻혀있는 다양한 이야기가 ‘시골버스 여행기 - 1250원의 행복’을 통해 펼쳐집니다. 서상면 방지마을(2018년 4월) - 금당리 소재- 세대 43가구- 인구 87명(남43, 여44)- 농가 29가구- 주요농산물 : 벼, 곶감, 감백제와 신라의 접경 의기 논개가 잠든 곳봄비가 제법 내리던 지난 4월23일 서상면 방지마을을 찾았다. 방지마을은 깃대봉에서 흐르는 계곡을 따라 펼쳐진 넓은 들 가운데 방지성 안쪽에 위치해있다. 방지는 꽃다울 방(芳), 못 지(池)를 쓰는 마을 이름처럼 커다란 못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메워지고 못은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밖으로 흐르는 냇가나 도랑은 없지만 방지마을은 땅만 파면 지하수가 콸콸 쏟아진단다. 물이 풍부한 이곳 방지마을은 그래서 논농사가 많고 농사가 잘된다.방지마을은 벼농사 외에도 딸기육묘와 곶감이 유명하다. 곶감도 잘한다. 서상면곶감작목반 반장이 이종국씨로 방지마을에 살고 있다.함양지리산고속의 농어촌버스를 타고 방지마을로 가는 길은 여러 개의 노선이 있다. 함양읍정류장에서 수동쪽으로 가든 지곡으로 가든 서상정류장을 지나는 버스를 타면 된다. 단, 방지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없어서 서상정류장에 내려 걸어가거나 행복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방지교를 지나 마을까지 걸어오려면 대략 30여분이 걸린다. 만만찮은 거리라 마을 어르신들은 행복택시를 이용한다. 행복택시는 농촌지역 어르신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마을에 운영되는데 마을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행복택시의 기사는 방지마을 박상희 이장(65세)이다. 방지마을에는 행복택시가 하루 3번 운행된다. 오전 8시40분, 오후 1시40분 마을에서 출발하고 오전11시40분에 서상정류장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택시다. 이곳 인근에서는 방지마을 주민들이 행복택시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방지마을을 방문한 날은 마침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봄일이 바쁜 철이지만 비오는 날에는 농사도 쉬는 날이다. 모처럼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모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낮에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드물다. 다들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해도 자식들이나 본인이 먹을 만큼만 농사를 꾸준히 짓고 있어 평소에는 고구마, 감자, 고추 들깨 등을 심고 가꾼다. 미소가 예쁜 김점복(78) 노인회장이 취재진을 반긴다. 얼마전 마을사람들과 같이 안면도 여행을 다녀와 사 온 간식거리를 내놓는다. 김점복 어르신은 이곳 방지마을이 고향이다. 방지에서 나고 자라 방지마을 남자와 혼인을 했다. 이곳으로 시집온 대부분의 어르신은 그 당시만 해도 신랑얼굴도 못보고 혼인을 했는데 김점복 어르신은 예외이지 싶다. 회관에 계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80세가 넘었다. 전용순(80) 어르신은 열여덟살에 시집왔다. “작게는 14세에서 20세 때 혼례를 치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어느덧 이 마을에서 60년을 지냈다”고 했다. “그럼 어르신들은 시집오셨을 때 다 친구였겠네요?”라고 묻자 “말도 마라, 시집살이를 하면서 집 밖에도 못 나가고 집안에서 일만 했다”고 그 시절을 더듬었다.“남편 바지에 묻은 얼룩을 지우기 위해 비누를 사와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거마저도 사주지 않아 물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아느냐” “밥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집안에만 있었지” “지금이야 이렇게 밖에 나와 놀지 시집와서는 문밖에 나가보지 못했다”라며 이구동성 어르신들이 과거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하소연하기도 했다.방지마을에는 논개묘가 있다. 자칭 논개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시던 주점복(89) 어르신은 꽃무늬 점퍼에 꽃무늬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이 예쁘다는 말에 웃으며 “얼마처럼 보여요?”라고 물었다. “엄청 비쌀 거 같은데~할머니가 입어서 고급스러워 보이나?” 어르신은 “오천원이야~” 서상 장에 나가서 싼값에 이쁜 옷을 샀다고 자랑했다. 이 마을에는 상점이나 식당이 하나도 없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병원에 가려면 서상면이나 안의, 함양, 거창 등으로 나가야 했다. 겨우내 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모여 김치, 나물 등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지어 점심, 저녁 식사를 늘 함께한다. 따라서 장날이 되면 반찬을 사기 위해 자주 장에 나간다고 했다. 12시가 넘어갈 때쯤 김점복(78) 어르신이 밥을 먹고 가라며 점심 준비를 위해 일어서니 다른 어르신도 부엌으로 들어가신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에,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상추겉절이가 후다닥 만들어진다. 방지마을 찾은 손님이라며 취재진에게 따로 상을 내 주신다. “우야꼬, 손한테 식은 밥을 줘서 되겠나” “점심 먹을 사람이 없을랑가 싶어 밥을 안했지” “저녁에 칼국수 해 먹을라꼬 일부러 밥을 안했더만” 푸짐한 상차림에도 식은 밥 내준 것을 못내 미안해 하신다. 마을회관 창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어른들 점심 상에 숟가락은 얹은 취재진은 구수한 된장찌개와 어르신 웃음소리를 반찬삼아 밥그릇을 비운다.  ◈ 방지마을 택시운전사 박상희 이장 박상희(65) 이장은 방지마을 택시운전사다. 이곳 방지마을에서 아들 셋, 딸 여섯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9남매 중 위로 누이가 4명이고 아들로는 첫째다. 그 당시 방지마을에서 형제가 가장 많았다. 박상희 이장은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가서 사회생활을 하다 2001년 1월, 31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2011년 1월부터 이장을 시작해 올해로 8년째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다 작년부터 그만두고 택시운전사가 됐다. 아들, 딸 남매가 모두 크고 용돈벌이만 하면 되니 택시 몰면서 이장을 한다. 박상희 이장은 서상초, 서상중학교를 졸업했다. 8살이 된 방지마을 학생들은 옥당초등학교로 입학해야 했다. 하지만 박상희 이장 동창들은 방지마을에서 옥당초등학교 가는 길이 너무 험해 입학을 하지 않고 한 해를 기다렸다가 다음연도에 서상초등학교로 입학하게 됐다. 2개 학년이 한꺼번에 입학하는 바람에 동창생이 36명이나 되었다. 박상희 이장의 졸업동기는 서상초등학교 132명, 서상중학교 113명이었는데 그 중 방지마을 출신이 가장 많았던 이유다. ◈ 방지마을의 명소 논개묘역 최경희 장군 묘 방지마을 옆 탑식이골에는 논개묘가 있고 바로 위에 최경희 장군의 묘가 있다. 흔히 논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끌어안고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하여 전공을 세운 의로운 기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전쟁의 혼란 속에서 그 직후 바로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출신과 삶 죽음 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로 지내오다가 1976년 이곳 탑식이골에서 발견되었다.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으로 서당 훈장의 딸로 태어났으며 성은 주씨이다. 박금순(82) 어르신은 “논개 생가는 장수군 장계다. 논개 시신을 지게에 싣고 일본군을 피해 큰 길이 아닌 백전으로 넘어왔다. 민재라는 고개를 넘으니 힘들어 이곳에 묘를 쓴 것이다”고 전했다. 논개묘가 있는 방지마을은 매년 칠월칠석(음력 7월7일)이면 논개제를 지낸다. 논개제는 안의향교에서 지내지만 제를 지내기 위한 준비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선다. 해마다 두 번 방지마을 사람들은 논개묘에 벌초를 한다. 6월말경에 벌초를 한번 하고 칠월칠석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에 한번 더 벌초를 한다. 전 주민이 나와서 하루종일 벌초를 하면 젊은 사람들은 예치기를, 어르신들은 갈퀴로 주변을 정리한다. 이 날은 마을주민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함양 방지성[咸陽芳池山城] 옛날 삼국시대에 이 마을 앞에 방지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방지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국경지대이기 때문에 어느 성씨가 마을을 개척하기보다는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에 의해서 그 가족들이 와서 개척된 마을로 보인다. “시집왔을 때 저기 큰 산성 안에 우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정말 무서웠다”라고 어르신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이 바로 방지마을에 알려진 방지성과 그 안의 우물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74호. 이 성은 삼국시대에 백제가 신라를 약탈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성을 쌓아 쌀을 비축하였다고 하여 ‘합미성(合米城)’이라 불리며 일명 ‘금당성(金唐城)’이라고도 한다. 또 마을 앞산 봉우리가 연못에 떠 있는 연꽃 같다고 하여 꽃다운 못, 즉 ‘방지 芳池’라 불린다. 현재 성벽은 상단부가 붕괴하여 흔적만 남아있고 성의 중앙에 할석을 이용하여 쌓은 우물이 있다. 설화에 의하면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그 깊이가 무한이라 하는데 지금은 풍상에 온전하지 못하다. “지금은 다 매여서 쓰지도 못해 우물 속 큰 바위에 부처가 있었는데 그 부처도 지금은 누가 가져갔는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마을을 빛낸 향우 재경함양군향우회장, 재경서상면향우회장 등을 역임한 강정구 회장((주)대양에스티 대표이사)이 서상면 방지마을 출신이다. 강정구 회장은 2006년 서상벚꽃길 조성사업을 위한 추진위원회에 추진위원장(재경)으로 활동하며 향우들의 힘을 모았다. 서상벚꽃길 조성사업은 재경향우를 비롯하여 서상면향우, 재부향우회 등 출향인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서상가꾸기 사업으로 성공한 사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올해로 제7회 서상면벚꽃길 축제가 지난 4월15일 서상면 대남리 일원에서 펼쳐졌다. 강정구 회장은 재경향우는 물론 서상면향우회를 비롯하여 고향인 방지마을까지 관심을 갖고 고향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며 이날까지 아낌없는 후원을 하고 있다. ◈ 길에서 만난 사람 “나도 논개와 일가” 주점복 어르신논개사당(의암사) 풀섶에서 쑥을 캐고 계시는 주점복(89) 어르신. 몸에 점이 많아서 부모님이 ‘점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호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고 파랗게 돋아난 봄 쑥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취재팀이 풀섶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주워 “어머니꺼 아니예요”라고 말을 걸자 “아이고 언제 빠짓노”라며 연신 고맙다며 어쩔 줄 몰라 한다.방지마을에서 3번째로 연세가 많다는 주점복 어르신은 “눈도 침침해 이제 잘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제법 수북이 뜯은 쑥 자루를 보여 주었다. 어르신은 서상중학교 뒤 도촌마을에서 19살에 시집와 70년째 방지마을에서 살고 있다며 방지산성 인근 능선에 큰 웅덩이이야기와 ‘탑시기 능선에 있던 망부석 이야기를 들려 줬다.주점복 어르신은 방지산성 쪽을 가리키며 “저 산너머 능선에 큰 웅덩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매워졌지만 옛날에는 명주실 한 타래가 들어갔을 정도로 깊었다”고 했다. “논개묘 왼쪽 능선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한 바위가 있었는데 누가 훔쳐 갔는지 안보인다”다며 “망부석이 사라진지 제법 오래됐다”고 아쉬워 했다.주점복 어르신은 “나도 주논개하고 같은 일가(주씨)라며 예전에는 방지마을에 주씨들이 많이 살았었는데 다들 이사 가고 이제 두집 밖에 없다”며 방지마을에 논개묘가 조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전해줬다.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정세윤·박민국·하회영·이혜영·유혜진·차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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