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과 신념은 통찰력을 가질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북유럽 교육의 흉내내기나 무늬만 가져와서 우리교육에 덧바르는 것은 통찰력의 부재다. 북유럽과 우리나라는 대학에 대한 인식과 사회구조, 경제적 자원과 복지, 교육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무엇보다 초·중·고의 교과교육 내용체계가 다른데 수업방식과 평가방법만 차용하는 형국이 혼란스러운 우리의 교육현실이었다. 그리고 이 혼란이 대입개편시안의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이번 2022 대학입시개편시안(이후 시안)발표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공정하고 단순한 대입제도를 원한다는 의견을 수렴했다’고 말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이후 학종)에 따르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학종기재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고 생각된다. ‘차라리 공부만 하면 되는 수능정시를 원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보도된 것이 얼마 전의 일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절대평가를 시행한지는 오래 되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통지표로 안내되는 성적은 수행평가결과를 문장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은 문장기록의 평가결과에 대한 불신이 컸다. 학업수행능력을 선명하게 알 수 없어 명확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고 인심 쓰듯 좋은 말로 기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중간·기말고사를 통한 숫자로 인식되는 시험점수를 선호했다. ‘성적이 우수하다’는 기술적記述的 표현은 애매하지만 98점은 확실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평가에 반영하지 않는 종전의 절대평가(지필)등급 90점 이상은 모두 ‘수’에 해당하지만 90점과 98점은 엄연히 다르다고 인식했다. 이런 와중에 도교육청에서 서술형평가를 도입하고 중간·기말고사를 없애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입전형으로서의 학종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학생들 간이나 학교 간 상대비교가 되지않고, 성적의 위치분포를 알 수 없고, 공정한 평가인지 의심이 가고, 노력만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려운 불공정한 무엇이 있다고 판단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학종축소’ 청원을 한 고3학생은 “학종전형은 정성평가 비중이 큰데 어떤 점이 부족해서 불합격했는지, 혹은 다른 학생은 어떤 점이 나보다 더 우수해서 뽑혔는지 객관적인 지표를 제공해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역교육환경이 낙후되어 있고 부모의 교육지원이 어려운 학생들은 공부만 하면 되는 5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이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육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의미에서 ‘단순하고 공정한 대입제도’ 라는 말에 주목했다. 2022 대학입시개편시안을 5개안으로 나열해서 국가교육회로 떠 넘겼든 어쨌든 대입개편안은 합당해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 사회적 계층이 뚜렷하게 나뉘고 교육환경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정책을 구현하기는 쉽지않은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정 계층의 이익을 반영하거나, 특정계층이 불이익을 당할 소지가 있어서는 안되며 학생교육을 두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은 모든 사람들의 문제다. 자기자신과 자식과 손주들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교육이며 크게는 국가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술평가와 논술, 토론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사고력의 신장이나 창의성의 문제, 사태와 사안을 파악하고 판단하는데 더 없이 좋은 교육방법이다. 선진국들이 기초교육에서부터 독서와 병행하여 에세이쓰기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소양과 자질, 초·중·고로 연계되는 교과내용체계, 학교건축의 구조 등 기반의 마련없이 유럽교육의 슬로건이 먼저 등장하고 수업과 평가의 방식만 차용하고자 하니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다. 선다형의 평가방식과 선발에 따르는 과도한 경쟁에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회현실이 내재되어 있다. 대학 진학인구가 적고, 굳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생업에 지장이 없는 나라, 어느 때이든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대학을 갈 수 있는 나라라면 경쟁이 최소화될 것이다. ‘좋은 것’의 이면,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통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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