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오는 날은 부침개에 산사춘 한잔 하면 좋은데...이 말을 아내한테 하려고 하니 말이 “비가 오는 날은...” 까지 밖에 안 나온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은~ 하고 두 번 말하다 말았다.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었으면 저녁에 농부는 술을 한 잔 할 것이고, 못 알아들었으면 따뜻한 밥에 뽕잎 순 무친 걸 고추장에 슥슥 비벼 먹으면 되니 뭐 아쉬울 건 없다. 비가 오는 날은 유채꽃이 참 처량해 보이네~ 비가 오는 날은 강아지들도 참 처량해 보이네~ 이 말이 아니라 비가 오는 날은 부침개에 산사춘 한잔 하면 좋은데... 이 말이 하고 싶었던 소심한 농부가 오늘 저녁은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오! 하늘이시여~비는 이제 그만 내리고 술을 한잔 내려 주시옵소서~
그제 시작된 봄비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일 년 농사를 축복하는 비라 순하게 내린다. 어린 강아지 쓰다듬듯 비는 부드러운 손길로 이 땅 위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어루만져 준다. 뽕잎 순이 나와 순을 채취해야 하는데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래 순은 지난 주 수확했어야 했는데 냉해를 입어 수확을 못했다. 높은 산에 순이 늦게 나오는 것은 괜찮을 지도 모른다고 하니 다래순도 아직은 기회가 있다. 올해는 다래순보다 뽕잎 순을 먼저 채취한다. 아직은 잎이 워낙 작다보니 부지런히 손을 놀려도 수확량이 얼마 되지는 않는다. 뽕잎 순을 찔레 순처럼 채취할 수는 없는지라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 한 이틀만 있으면 잎이 따기 좋게 먹기 좋게 자랄 것이다.올 들어 감나무 밭에는 처음 발을 디뎠다. 년 초에 낙상하는 바람에 감나무 농사는 한 해 쉬려고 했는데 귀농인이 감나무 밭을 집터로 일부 떼어달라고 해서 같이 밭에 가보았다. 올해 전국적으로 과수 냉해가 심하다는데 다행히 우리 감나무는 상태가 아주 좋다. 수동에 감나무 농사를 크게 하는 지인은 냉해로 잎도 꽃도 하나도 안 달렸다고 하는데 우리 감나무는 잎과 꽃이 많이 달렸다. 올해는 감이 귀할 것이고 곶감 값은 비쌀 것이라고 하니 감농사 한 해 쉬려는 생각이 싸악 사라졌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감 농사를 지어야겠다.
비가 흡족하게 내리니 논마다 물이 가득이다. 요즘은 모판을 주문해서 모내기를 많이 하는데 수 년 전만 해도 직접 황토 흙을 퍼 와서 곱게 채를 쳐 못자리 흙 만들고 볍씨 파종부터 모두 직접 했다. 십 몇 년 전 내가 첫 논농사를 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손이 많이 갔다. 그해 나락 48가마 추수했는데, 논농사는 그 해 딱 한 해 만 하고 말았다. 마을 할머니가 논농사는 일도 없어~하고 꼬시며 논을 닷 마지기 빌려주셔서 덜컥 받았는데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추수해서 이거 빼고 저거 빼고 나니 남는 게 요샛말로 1도 없었다. 그 뒤 곶감 팔아 번 돈으로 논을 열 마지기 사서 논을 갈아엎고 모두 감나무 밭을 조성했다. 그 결과 나는 지금 더 큰 고생을 하고 있다. 남는 거 없기는 논농사가 감 농사나 매 한가진데 괜히 논을 밭으로 갈아엎고 나무 심고 가꾸느라 일만 더 힘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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