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부실한 나는 병원을 제 집 들락날락거리듯 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넉 달도 못 되어 폐렴으로 또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아직도 6인실이 존재하는 병실은 비좁기 그지없다. 때문에 몇몇 사람이 병문안을 왔다 가면 그 집안 사정을 대충은 짐작하게 된다. 창가 쪽 아저씨는 밤에 화장실을 갔다 오다 문턱에 넘어져 갈비뼈 두 대가 부러졌다. 하지만 여러 말을 종합해 보면 술 취해 넘어져 갈빗대가 부러진 것이 분명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적당히 가감하며 말하는 것이 어쩌면 순진해 웃음이 난다. 문 옆에 아저씨는 농사철 농수량을 살펴보기 위해 관계자들과 함께 저수지를 가는 도중 마주 오는 1톤 트럭과 부딪쳐 5,6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나 입원했다. 목에 기브스를 하고 고통을 참으며 보험관계자와 이런저런 사고 경위를 작성하는 모습이 더 고통스러워 보인다. 서류라는 종잇장은 인간을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닌다. 사고 과정과 합의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생도 비슷하다는 진리를 곁눈질로 배운다. 내 옆자리에서 밤새도록 비명을 내지르던 아저씨는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트럭에 벌채목을 싣던 중 통나무가 우르르 쏟아져 내려 몸을 깔아뭉갰다. 주위 동료들이 필사적으로 구조했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갈비뼈 일곱 대와 허벅지 뼈가 나갔으니 몸이 온전할 리 없다. 결국 이틀만에 진주 큰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했다. 이런 시골의원에서 치료할 병이 아니었는데 처음부터 왜 큰 병원에 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전에 나도 밤이면 열이 38도를 넘나들어 5일간 입원했는데 낫지 않았다. 독감이라던 의사는 나중에 이상하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도시의 의사는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고 배를 몇 번 쓰다듬어 보더니 신장염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쉬운 신장염의 일반적 증세를 시골 의사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글쎄요, 피검사만 잘 살펴보았어도 알 수 있었는데... 치료하다 나으면 좋고 안 되면 큰 병원 가라는 일반적 관례는 좀 더 세밀한 진료기준 체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병원이 무섭다. 접수처와 검사부서의 담당 직원이 무섭다. 웬만한 물음엔 답하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권력을 가진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거들먹거리며 지시한다. 사근사근 말하면 안 될까?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라는 말이 없다. 큰 병원처럼 대기자 명단이 표시되면 좋을 텐데. 이곳은 아직도 안면이 통하는 사회다. 나는 의사가 무섭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야릇한 반말은 예사다. 병원은 그들의 왕국이며 환자는 그들의 국민이다. 혀에 힘이 들어가 있다. 몇 년 전 일이지만 내가 병의 궁금증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달라고 하자 내가 당신한테 의학적 용어를 써가며 병에 대해 설명을 하면 알아듣겠어요? 그러니 그냥 의사가 시키는 대로 믿고 따르면 되는 거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환자에겐 병에 관한 모든 설명을 물어볼 환자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복도에서 날벼락이 쳤다. 이 술주정뱅이 고주망태 306호 환자 내게 잡혔어야 하는 건데. 소주병이 4병이나 나와? 환자는 이미 퇴원하고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청소부 아지매가 마침내 식식거리며 내 앞의 환자에게 들이닥쳤다. 이게 여기 쓰레기통 맞지예? 이 소주병이 여기서 나왔는데 술 먹은 거 맞지예? 퇴원하세욧! 지금 당장 나와 담당의사에게 가욧! 이런 사람은 병실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청소부 아줌마에게 살살 빌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하고야 소동은 끝났다. 생명과 싸우는 전선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기에 유지된다. 밤을 새며 묵묵히 친절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간호사가 오늘따라 예뻐 보인다. 나이팅게일의 새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날아다니며 생명의 노래를 불러주기에 세상은 건강하게 새 아침을 맞는다. 병원에는 권력자가 아니라 상대의 아픔을 나누는 아름다운 새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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