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옆에 살다보니 가끔 둘레꾼이 들린다. 지난 휴일엔 둘레꾼 여럿이 물 얻으러 왔길래 곶감 집에 오셨으니 맛이나 보고 가시라고 곶감을 내어 놓았다. 내가 직접 말린 곶감이라며 대봉곶감을 하나씩 권했다. 근데 일행 중에 부모 손잡고 온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초딩1?), 곶감 포장재에 쓰인 글씨를 읽어보더니 “아저씨 무유황곶감이 뭐예요?” 하고 당차게 물어본다. 어린 아이에게 무유황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머리를 굴리며 무유황이란 그게 말이다... 그게 말이다...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대신 설명을 해주는데 참 기발하다. “너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숨 쉬기 힘들지? 또 황사 오면 목 아프지?....“ 나는 페트병에 물을 채워 주느라 자리를 떠서 설명을 끝까지 듣지는 못했는데, 아마 무유황곶감을 요즘 환경오염에 빗대어 설명을 해준 듯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둘레꾼을 우리 집 곶감 홍보대사로 위촉했어야 했는데 그냥 보내 버렸다. 아까비.ㅎㅎ 날씨가 화창하니 평일에도 둘레꾼이 지나간다. 꽃이 많이 피는 철인지라 가끔은 꽃구경하러 들리는 사람도 있고 드물게는 곶감 사겠다는 사람도 있다. 지난 겨울에 곶감 포장이 늦어지는 바람에 미처 못다 판 곶감이 아직도 많아서 꽃피는 사월인데도 요즘 나는 매일 곶감 택배 보내고 있다. 비록 시즌은 지났지만 주문은 제철 못지않게 이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집에 들린 둘레꾼은 곶감을 사겠다고 올라왔는데, 나는 먹고 가는 것은 공짜라며 대봉곶감을 맛배기로 권하니 이렇게 큰 곶감은 처음 본다고 깜짝 놀란다. (내가 만든 곶감의 대부분은 SNS를 통해 팔리고 있는데 대봉 곶감을 받은 고객은 두 번 놀란다. 첫 번째 너무 크다고 놀라고 두 번째는 너무 맛있다고 놀란다. 고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완전 뿌듯하다. 고객이 만족해서 엔돌핀이 100 정도 솟았다면 그 말을 듣는 나는 엔돌핀이 200, 300 솟는다.) 나는 맛보시라고 내 놓은 곶감의 크기에 놀라는 둘레꾼이 달콤한 맛에 한번 더 놀랄 걸 은근히 기대하면서 먹고 가는 건 공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아무리 먹고 가는 건 공짜라지만 두 개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귀한 걸 공짜로 먹는 데에 대한 체면 치례도 있겠지만 큼직한 곶감을 연달아 두 개 먹기가 실로 만만치도 않다.비록 지나가는 손님일지언정 내 집에 온 손님에게 물 한 잔이라도 권하는 건 인지상정이고, 곶감으로 일 년 밥 먹는 내가 손님 접대로 곶감을 내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사실은 내 놓을 게 곶감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곶감 농사가 주업인 나로서는 길손 접대가 가만히 앉아서 곶감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둘레꾼이 집에 들리면 나는 내가 말린 곶감 중 가장 크고 때깔 좋은 것을 내어 놓는다. 공짜로 먹는 길손 입장에서는 “아이고~ 이렇게 좋은 건 팔아야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막 내어 놓으면 어쩌느냐고” 손사래 치기도 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기왕 내는 거 최상품으로 내어야 생색도 나고 홍보도 된다. 길손 입장에서는 선물용으로 팔릴만한 곶감을 얻어먹으니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나도 나름 계산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가장 크고 좋은 곶감을 얻어먹은 사람은 언젠가는 연락이 온다. 나는 곶감 농사를 십년 이상 하다 보니 단골이 많이 생겼는데 이런 인연으로 생긴 단골도 많다. 산골짝에 살다보니 잔머리만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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