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백산 황석산 이마에 잔설이 하얄 때 용추골로 전근을 왔습니다. 가는 겨울을 끈질기게 붙들고 찬바람이 불어내리는 용추골짝에서 언제나 꽃이 필까 봄을 기다렸는데, 온 봄이 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산수유가 피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눈이 내리고, 산에 진달래 피니까 담장에 살구꽃, 냇가에 늦은 개복숭 꽃마저 속절없이 폈다 져버립니다. 용추골의 봄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온 나라의 꽃들이 순식간에 폈다 지는 모양입니다. 금세 왔다 가는 봄에 저는 손 흔들어 살갑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쟁기로 서 마지기 스물 닷 도가리(‘논배미’의 우리 지역말) 다락논을 갈던 힘겨웠던 시절에도 아버지들은 봄이면 꼭 회차(해치, 마을 사람들이 야외에 모여 하는 잔치, ‘모꼬지’의 옛말)를 여셨습니다. 진달래꽃이 피는 산 아래 물 좋은 냇가에 온 동네 사람들이 자리를 펼쳤습니다. 돼지 한 마리 잡고, 솥뚜껑에 파전도 구워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장구가락에 흥이 오르면 늴리리야 니나노하며 춤도 추었습니다. 그렇게 한판 흥을 돋우며 농사의 시동을 걸어야 오뉴월 첫 장마를 기다려 호미로 모를 낼 산허리 천수답 다락논까지 장만해 볼 기운을 얻었을 겁니다. 회차의 기억은 새마을 운동으로 동네마다 새바람이 불고, 경운기가 들어오면서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어쩌면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서 회차에 기웃대며 꽃전 한 젓가락 얻어먹을 기회가 없어서 제 기억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차는 사라져갔지만, 아버지는 모를 다 내면 큰 강에 내려가 천렵을 하고, 호박잎도 땡볕에 지쳐 쳐지는 여름이면 닭 한 마리 잡아 옻을 넣어 삶았습니다. 찬바람 도는 가을이면 오일장에 나가 전어나 호래기 한 봉지라도 사 와서 이웃들을 불러들여 계절이 가는 것을 꼭 매듭 지으셨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저 졸업하지 못하신 아버지도 봄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으셨는데, 대학교까지 나온 아들은 그 시절의 아버지 나이가 넘어가는데 아직 철이 없습니다. 높은 산 깊은 골 함양의 산산골골 대자연을 늘 보고 지내면서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듯이 철을 모릅니다. 얼마 전 벚꽃이 만개한 밤에 문득, 늦게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벚나무 가지에 걸린 보름달을 보며 잠시 섰던 게 봄을 본 마지막이었나 봅니다. 일 년을 돌아서 다시 찾아온 봄을 보며 버선발로 반가이 맞아 주지 못하고 무뚝뚝하게 돌아섰습니다. 그런 무심한 밤이 몇 밤, 봄은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쿨하게 돌아섭니다. 불러 세울 틈도 없이 저만치 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올해는 두릅과 엄나무 순이 같이 피더니 연달아서 옻순까지 일찍 올라왔습니다. 두릅은 내일이면 쇠어서 못 먹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시골에 살면서도 자연의 변화조차 모르게 바쁜 것이 혹 부질없는 욕심 때문이겠지요.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와 자연이 주는 귀한 지혜를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돌아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웃들 불러서 감나무 새순 아래서 회차 한번 해야겠습니다. 봄은 제 갈 길을 갈뿐,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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