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새로운 종교에 심취해 있음을 고백해야겠습니다. 맨발로 다니는 할머니를 교주로 모시는 신흥교파인데 타샤 튜더교입니다. 미국에서 건너왔는데 한국에도 신도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유일신인 지름신을 숭배하고 있지요. 오늘도 나는 기도하고 응답 받았습니다.
(확 질러버리라... 네...) 새로 온 나리를 심을 화단이 부족해서 호미로 잔디마당을 일구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땅을 파고 있는데 뒤꼭지에 신앙심이 깊지 않은 아내의 눈총이 느껴졌습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잔디마당을 왜 자꾸 뒤집어 엎는 거야... ) 신앙심이 깊지 않은 아내가 구근을 보고 또 산거냐고 묻길래 누가 (돈 받고) 보내준 거라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불필요한 말은 생략하구요. 나는 신앙심이 깊지 않은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같이 하자고 권하지도 않습니다. (같이 지르다 잘못하면 거덜 날 수 있거든요)
나는 흠모하는 교주님을 본받기 위해 맨발로 다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발 닦기가 귀찮아서요. 아직 심지 못한 다알리아, 아이리스, 작약, 그리고 매발톱이 오면 어디 심어야할까? 잔디마당을 또 뒤집어야 하나... 이런 저런 고뇌에 잠겨 있는데 아이들이 마당에서 공을 차다가 또 튤립을 분질렀습니다. (밤의 여왕이시여! ...당신의 허리를 걷어찬 저 철없는 것들을 용서하소서...)
호미질을 끝내고 충만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주일이라고 이웃에 사는 이교도 부부가 놀러왔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개를 숭배하는 부부랍니다. (세상에~ 그들은 개를 방에 모시고 살면서 사람처럼 옷도 입히고 매달 미용실에도 데리고 가고 온갖 맛있는 것을 다 사 먹인답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숭배하는 교주를 향해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마당 한편에 있는 모종판 위를 그들의 교주가 퍽퍽 짓밟아 버린 것입니다. (아이쿠야~ 갓 올라온 해바라기 새싹을... 아이쿠야~ 접시꽃 모종도...) 나는 성질 드러운 우리 개를 슬쩍 풀어 보복을 할까하는 교활한 생각도 했었지만 그만 두었습니다. (하기사... 이 많은 모종을 다 옮길 자리도 없지...)
산은 지금 일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깊은 산에만 사는 새가 아름답고 고운 고음의 피콜로를 연주하면 수많은 벌들이 잉잉거리며 반주를 넣습니다. 오늘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은 굳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네요. 허리를 펴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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