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의 첫 문장이다. 좁은 땅덩이 속에 몇 천 년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유형, 무형 유산이 우리 발길 닿은 곳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라 일컫는 함양은 정자문화의 박물관이기도 하다. 덕유산 자락이 흘러 내리는 서하면과 안의면에는 함양의 정자문화가 꽃피운 화림동 계곡이 있다. 세상 만물들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부지런히 알리고 있는 4월은 내 고장의 정자문화를 엿보기 가장 좋은 때이다. 자연 속에서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들어 앉아있는 정자들이 변하는 계절 속에서 우리의 답사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물가에 피는 철쭉을 사람들은 수달래라 부르기도 하는데, 수달래가 필 때는 거연정의 경치가 좋다. 물을 좋아하는 녀석은 바위틈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진분홍의 꽃을 잎과 함께 피워낸다. 강 한가운데 솟아있는 바위 위에 지어진 거연정은 구름다리를 건너야 오를 수 있다. 세찬 강바람을 이겨내고 납작하게 엎드려서 생명의 위대함을 뽐내는 수달래는 명승으로 지정된 거연정 일원에 사진작가들을 불러들인다. 햇살 따가운 날 시원한 바람이 생각난다면 군자정에 올라보라. 강에 바짝 붙어있는 바위 위에 소박하게 앉아있는 군자정은 언제나 시원한 강바람을 선사한다. 정자에 누워 눈 속에는 바람을 담고, 귀에는 시원한 강물소리를 담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이상고온 현상으로 차례로 피어야할 봄꽃들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 우리를 당황시켰지만 어김없이 벚꽃은 피었다. 벚꽃이 날리는 계절에는 동호정이 좋다. 정자 앞 큰 너럭바위 포트홀에 꽃잎이 날아들면 물 위에서 꽃은 다시 한 번 피어난다. 너럭바위를 앞에다 두고 늠름하게 서 있는 동호정은 주춧돌도 없이 나무를 다듬지 않고 바위 위에 그대로 기둥을 세웠다. 정자 기둥은 옆에 있는 오랜 벚나무와 닮아 울퉁불퉁한 줄기를 가졌고, 도끼로 대충 찍어서 만든 투박한 통나무 계단과의 조화는 어쩌면 만든 이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는 것만 같다. 늦게 잎을 피워내는 배롱나무는 농월정의 친구다. 얼마 전 복원된 농월정은 국민관광지로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기도 하지만 배롱나무가 생명을 피워내야 비로소 그 풍경이 완성된다. 물론 한여름 진분홍의 꽃이 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매끈한 배롱나무에 새싹이 돋아나도 그 운치가 참 좋다. 농월정 앞 왕버들이 연두 빛 잎을 피워낼 때, 월연담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것이다. 화림동의 정자들은 선비들이 마냥 풍류만 즐기던 곳은 아니다. 때로는 강학공간으로, 때로는 공동체의 회합장소로 쓰이기도 했으며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온 곳이기도 했다. 풍경을 눈에 담았다면 옛 사람들의 발자취를 쫓아 정자의 현판, 기문, 바위 위에 각자된 글자의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짙어지는 푸르름 속에 녹아들어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은 자연스레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그 풍경은 매일 변하고 있다. 4월의 푸른 날 내 고장 답사 일 번지 ‘화림동 계곡’에서 정자문화를 듬뿍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