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하고 손을 내밀 때 나는 앗~하고 상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상대방은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불과 두어 시간 전에 마주친 적이 있다. 읍에 있는 목욕탕에서였다. 그 사람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열탕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었고 기분이 좋아서 음~ 하는 신음소리를 나지막히 내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우연히도 탕 안에 같이 몸을 담그게 되었는데, 두어 시간 뒤 바깥에서 나는 그 사람을 기억했고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그 사람을 바로 알아본 건 그 사람의 특이한 외모 때문이었다. 나는 워낙 평범한 인상이라 그 사람은 나를 보고도 벽을 보듯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사람은 장독 같은 몸통에 농구공만한 머리를 얹어놓은 것 같았다. 참 개성있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눈사람을 떠올렸다. 목이 아예 없었다. 큰 덩치에 비해 얼굴은 비교적 순박하게 보였지만 탕에서 나갈 때 등을 보니 용인지 뱀인지 모를 문신이 크게 꿈틀거리고 있어 내심 놀랐다. 괜히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불과 몇 시간 뒤 내가 그 사람과 악수를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그 사람은 부산에서 과일도매를 크게 한다는 상인인데, 함양에 있는 거래처를 방문했다가 누군가가 우리 집에 곶감이 아직 많이 있다고 소개해서 찾아 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전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셨냐고 하니 지나는 방향이라 겸사겸사 들렀다고 한다. 어쨌든 내 집에 온 손님이라 반갑게 맞으며 얘기를 들어보니 과일이란 과일은 다 사고 파는데 곶감도 많이 취급하고 있다 한다. 비록 지금은 곶감 철은 아니지만 규모가 있는 상인이니 어쩌면 나중에라도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곶감 냉동 창고를 구경시켜 주었다. 냉동 창고에 있는 곶감은 지난 겨울 포장이 늦어져 판매시기를 놓친 것들인데 양이 제법 된다. 제 때 포장만 했더라면 대부분 선물용으로 팔렸을 곶감들이다. 내가 만든 것이라 자랑 같지만 등급으로 따진다면 모두 특품이라 할 수 있는 상품이다. 나는 맛을 보면 깜짝 놀랄 거라 기대하면서 큼직한 대봉곶감 한 개를 맛배기로 권했다. 하지만 상인의 반응은 내가 생각한 거랑 달라 오히려 내가 놀랐다. 아니 반응이랄 게 아예 없었다. 아무리 거래의 달인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달고 숙성이 잘 된 곶감을 먹고 돌부처가 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실상 나는 대부분의 곶감을 SNS로 판매하고 있기에 곶감을 주문한 고객의 후기를 받는데 익숙해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카스채널에 어제 올라온 후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곶감 느므 맛나게 묵었는데 이제야 후기올립니다 지인들과 나눠 먹었는데 여기저기서 와!~~~~~^^ 와!~~~~진짜 맛있다 연발이었답니다 감사 드립니다 자알 묵었습니다^^~ ~쫀득하고 달콤함이 유혹하고 있어요 ㅎ 머니의 출혈 때문에 자제하렵니다> 이 정도의 치사는 아니더라도 남의 곶감을 맛을 보았으면 예의상이라도 무슨 말이 있을 법한데 전혀 말도 표정도 없어 나는 살짝 실망했다. 하긴 내가 상인이 되어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면 나 역시 포커페이스를 하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상인은 좋은 곶감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는 정당하게 제 값 받고 팔 생각에 밀 거는 밀고 당길 건 당겼다. 결국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인은 겸사겸사 왔다는 말처럼 겸사겸사 가버렸다. 크게 불었다가 놓쳐버린 풍선처럼 하루가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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