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제 고향이 함양인줄 알아요. 고향인 고성(경남)보다 함양에 더 오래 살았으니 함양이 고향인 셈이죠.”
함양읍 교산리 함양성당 맞은편에서 음향사와 이벤트사를 함께 운영하는 ‘코러스 음향 이벤트’ 박권목(58) 대표의 이야기다. 박 대표는 “한달만 도와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낯선 타향살이를 시작해 함양사람이 된지 벌써 30년이 됐다.
그는 지난 주말 열린 ‘백운산 벚꽃축제’를 성황리에 마무리한 숨은 주인공이다. 올해로 백운산 벚꽃축제를 3년 연속 기획하고 있다.
그는 음향이나 무대시설 설치에서부터 사회, 초대가수 섭외 등 행사 일체를 총괄하는 총감독이다. 축제의 성패가 그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행사가 크든 작든 일을 맡으면 대충하는 성격이 못된다”는 박 대표. “그래선지 큰 돈은 못번다”며 멋쩍어 한다. 그는 지역행사 뿐만 아니라 부산, 마산, 진주 등 가끔 원정길에 나서기도 한다. 축제가 많은 봄과 가을엔 더욱 바빠진다. 축제, 체육대회 등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대부분이지만 동창회, 사회단체 행사는 물론 칠순잔치나 돌잔치와 같은 개인 행사도 맡아한다.
그가 운영하는 ‘코러스 음향 이벤트’의 원래 주력 업종은 음향기기 쪽이었는데 이제는 음향 보다 이벤트 기획일이 더 많아졌다. 음향쪽은 노래방 반주기와 방송 음향기기를 대여하거나 판매하고 AS하는 일이다. 노래방이 주거래처다.
한때는 기계를 납품하고 관리했던 노래방만 50곳이 넘었다. 함양은 물론 통영, 진주, 고성과 장수, 인월까지 영호남을 오가며 거래처를 관리했다. 이벤트 일이 많아지면서 다른 지역 노래방은 모두 정리해 이제는 함양읍에 있는 노래방 10곳만 거래처로 두고 있다. 노래방기계와 마이크 등 음향장비 수리는 기본이고 신곡이 나오면 신곡을 보급하는 일도 박 대표가 하는 일이다.
노래방은 야간 영업이 피크시간이다 보니 밤 10시까지는 1년 열두달 대기상태나 다름없다. 거래처에서 SOS가 오면 바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50곳의 노래방을 관리할 때는 밤잠을 제대로 자 본적이 없다”는 그는 “요즘엔 야간 일은 줄었지만 이벤트가 많은 주말에는 밤낮으로 일해야 하니 일복 하나는 타고 난 것같다”며 운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고향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마산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고교 진학후 박 대표는 음악밴드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는 트럼펫 연주를 맡았다. 밴드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 한 것도 아니다. 산업화 시대였던 당시는 인문계보다 공고의 인기가 높았다. 우수한 성적이 아니면 공고에 진학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마산공고 기계과에 입학한 그는 기계제도 및 용접, 선반 등 관련 자격증도 모두 취득했다. 졸업과 동시에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 입사했다. 직장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한지 두달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고교 동창이자 밴드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던 친구와 같이 사직서를 냈다. 음악을 하기 위해 부산행을 택했다.
당시 유행했던 나이트클럽 연주자로 친구와 함께 7인조 그룹사운드 생활을 했다. 군입대 전까지 2년동안 밤무대를 누볐다. 군대 생활 3년도 군악대로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에도 부산과 광주 등 대도시에서 밤무대 악사로 음악과 함께 했다.
그는 “고교 동아리 때부터 군입대 전까지 함께 활동했던 친구의 요청으로 잠시 그를 돕기 위해 왔던 것이 지금껏 함양에 눌러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나보다 아내가 함양을 더 좋아해 계속 함양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1988년 아내와 단 둘이 함양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세 자녀를 둔 다섯 가족의 가장이 됐다. 1남2녀의 자녀는 어느덧 성인으로 성장해 두딸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막내인 아들은 대학생으로 휴일이면 온 가족이 박 대표의 일을 도우며 특별한 가족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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