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오후 6시 30분경,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업무를 마치고 생산부 직원들을 퇴근시키기 위해 본인 명의의 9인승 승합차 운전석에 오르다가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아내는 사무실 경리를 비롯해서 10년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햇수로 5년 전에 꿈에도 그리던 식품 회사에 정규직 직원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생산관리 직원으로 일하면서 작은 미자립 교회를 목회하는 필자를 도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성도들을 돌보던 아내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더 늦게 퇴근하면서 자신의 차로 직원들을 출퇴근시키는 일까지 책임져 왔다. 연년생으로 아들만 둘을 둔 필자는 16년 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겨울 방학 때 필자의 고향인 경기도 김포를 떠나서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왔다.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와 도움으로 시골 목회를 하는 동안 눈물과 웃음이 수십 번도 더 겹쳤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경상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필자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아내는 아무리 불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 상태로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CT를 보여주면서 담당 의사가 말했다. 숨골 뿌리 부분에서 뇌출혈이 발생했고, 출혈량이 많기 때문에 매우 위독한 상태여서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의사는 어쩌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면서 길면 2, 3일이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69년생인 아내는 4월 23일생으로 우리 나이로 이제 쉰 살이고 만으로는 아직도 48세인데, 인생 딱 절반을 살고 가다니... 그동안 따뜻한 위로 한 번 해 주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난 2월 3일에 결혼한 작은 아들 내외가 포항에서 달려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해군 제3함대에서 복무하고 있는 큰아들도 목포에서 급하게 왔다. 임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며느리가 아내를 서울로 후송하자고 제안했다. 무조건 서울로 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지만, 며느리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모든 결정권을 아이들에게 맡겼다.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CT를 촬영했다. 삭발을 하고 수술실로 들어간 아내는 6시간이 지난 늦은 밤에 수술실을 나와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20일이 지나도록 아내는 아직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간간히 하품도 하고, 눈을 감은 채로 눈도 깜빡거리고, 석션(suction)을 할 때면 인상도 찡그리면서 재채기를 하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기만 했다.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8시, 하루에 두 번 허락되는 면회 시간이 되면 담당 의사나 간호사의 설명을 빠짐없이 기록해서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에 올려서 동역자들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두 번씩 계속 카톡을 울리는 것도 스팸 문자처럼 보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어차피 장기전을 준비해야 할 일이었기에 필자는 아예 고시원 하나를 잡아두고는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병원을 드나들면서 아내를 돌보기로 했다. 그동안 얼마나 피곤했으면 깨어나지도 못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언제쯤 아름다운 지리산자락에서 다시 행복한 목회를 함께 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던 것처럼 아내가 다시 일어나서 지리산에 함께 오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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