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집집마다 샤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이전처럼 목욕탕에 자주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고향 서상면 소재지에도 오래전에 목욕탕이 하나 생겼었는데 이용자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얼마가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아쉬웠다. 힘든 일을 하고 땀을 흘린 후나 왠지 몸이 좀 무거울 때 목욕탕에 가서 뜨끈뜨끈한 열탕에 몸을 담그는 그 기분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봄기운에 눈 녹듯이 저절로 피곤이 스르르 풀린다. 그런데 흐르는 세월 속에 요즈음은 목욕탕 풍경도 옛날과는 사뭇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차이점은 등 밀어주기이다. 이전에는 목욕탕에 가면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제가 등을 밀어드리겠습니다” 하고 밀어 주면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사람이 또 등을 밀어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럼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때로는 서로 통성명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재미도 목욕탕에 가는 맛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부터도 목욕탕에 갈 때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등을 미는 도구가 잘 나와서 굳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혼자서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목욕탕에 갈 때 마다 그런 도구를 반드시 챙겨 가지고 간다. 아들과 같이 갈 때에는 서로 등을 밀어주지만 다른 사람과 서로 등을 밀어 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나도 등을 밀어 달라는 요청을 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도 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각자 자기의 할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고 그리고 자기가 마무리하고 탕을 나온다. 꼭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편리하고 좋은 면도 많다. 하지만 왠지 사람 사는 정이 없는 것 같아 조금 아쉽기는 하다. 목욕탕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내버스를 타도 가방을 받아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세상이 하도 그래서 그런지 가방을 달라고 하는 말도 쉽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이전과 비교해서 경제소득이 높아져서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생활수준이 많이 향상 된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질도 높아지고 특히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의식과 풍토도 더 깊어져 갔으면 하는 바람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3~4주 전인 것 같다. 그 날도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 집에서 좀 거리가 있어서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온천물이 좋아 가족 모두가 같이 가끔씩 찾는 곳이다. 아들은 먼저 목욕을 마치고 나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연세가 많으신 분이 등을 서로 밀어 주자고 하였다. “저는 아들이 밀어 주어서 안 밀어도 됩니다. 제가 등을 밀어 들이겠습니다.”하고 등을 밀어 드렸다. 등을 밀어 들이는데 몸이 정상이 아니었다. 손도 한쪽이 많이 장애가 있었고 한쪽 다리도 그랬고 꼬리뼈 부분도 그랬다. 몸이 왜 그러시냐고 물어 보기도 그렇고 해서 조용히 등을 밀어 주고 있었는데 그분이 십 여 년 전에 남의 집 일을 해 주다가 농기계에 다쳐서 그렇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연세가 83세라고 하셨는데 아직도 정정하셨다. 그리고 지리산 백무동계곡에 살고 있다고 하셔서 다음날 제가 한 번 가서 뵙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나의 일만 생각하느라 옆에 있는 어르신 생각을 못했다. 내 생각에만 골몰하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의 필요는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먼저 “어르신 제가 등을 밀어 드리겠습니다” 해야 했던 것이 백번 맞는 것인데...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했는데 세상의 물결과 함께 내 속에 있는 적은 사랑마저도 점점 떠내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깊은 한숨이 터진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당분간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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