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는 게 무슨 죄라도 되는 건가?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번쯤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세간의 이해 부족에 대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 한소리 했던 경험이 떠오를 것이다.
세금까지 포함해서 정당한 대가,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사서 마시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가정이든 대부분 ‘마누라’나 자식들로부터 ‘술 좀 그만 먹으라’고 잔소리 듣고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로부터 ‘하고많은 날 술타령에 취생몽사(醉生夢死) 하는 주정뱅이’라는 꾸지람을 듣는가 하면 의료진으로부터도 ‘간 경화나 간암이 걸릴 위험이 있다’라는 경고를 듣게 된다. 한 마디로 술을 마시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고 나쁜 짓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부정적 표현 일색이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화색(華色)도 참 좋으시고 암벽등반을 하는 것으로 봐서 체력도 보통이 넘을 것 같고 몸과 마음이 다 같이 건강하다는 판단이 서는데 건강을 위한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물론 당연히 비결이 있습니다!”“그게 뭡니까?”“제가 연중무휴로 철저히 실천하는 대표적인 건강 학설이 바로 ‘알코올 소독설’입니다.”“아하! 그런 건강 학설도 있습니까? 그거 어떻게 하는 것인지 좀 가르쳐주시죠?”“예, 제가 외부 건강 강연은 1년에 약 1백여 차례 실시하고 산행은 연간 평균 80여 차례 행하는 데 비해 ‘알코올 소독’은 연간 6백여 차례 실시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는 편이죠?”
뭔 얘기를 하는 것인지 감을 못 잡아 어리둥절한 옆 사람에게 눈치가 빠른 어떤 사람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아! 알았다. 술을 열심히 드신다 이 말씀이죠?”라고 하면서 다 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술은 간장, 된장, 김치, 치즈 등 세계 각국의 여타 발효식품과 궤를 같이하는 대표적인 발효식품의 하나이지 절대로 불량식품이거나 몸에 해로운 유해 식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그 일부분의 부정적 현상에만 집착해 나머지 모두를 싸잡아서 다 같이 좋지 않은 것처럼 인식하고 표현해온 것이 술 문제의 본질이라 하겠다.
즉 술이 나쁜 것이 아니고 나쁜 술이 있는 것이며 술이 어떤 사건 사고의 중심에 있는 원흉이 아니라 제 체력의 한계를 초월해 주책맞을 정도로 과음(過飮)을 하여 혀도 꼬부라지고 눈도 뒤집히고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 못난 ‘주졸(酒卒)’의 비이성적 작태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술만 취하면 괜한 일을 갖고도 시비를 걸고 성추행을 서슴지 않으며 간이 부어서 분에 맞지 않는 객기(客氣)를 부리는 등 온갖 추태의 원인을 어찌 모조리 술로 몰아가는 것인가?
술은 정말 영원한 중립이라서 어느 한 편으로 기우는 법이 없는지라 착한 사람이 먹으면 그 사람에게서 착한 말과 행동이 나오고 못된 사람이 먹으면 그 사람에게서 못된 말과 행동이 나오는 법인데도 저 자신을 돌아보기에 앞서 술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우(愚)중의 대우(大愚)를 범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하겠다.
요즘 시판되는 국내외의 술병 표시사항을 잘 들여다보노라면 익숙하지 않은 물질들, 예컨대 단맛을 내기 위해 막걸리에 첨가되는 아스파탐,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의 변질을 막기 위해 첨가되는 이산화황, 그리고 이름조차 생소한 각종 화학 물질들의 명칭이 나열되어 있다. 법적으로 의무화했으므로 표시를 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주당(酒黨)을 포함한 일반인들이 그들 첨가물과 화학물질들의 기능이나 작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고 그래서 별반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객기마저 부리면서 이술 저술 가리지 않고 마시는 우(愚)를 범하여 주위 사람들의 우려대로 간담(肝膽)을 위시하여 오장육부(五臟六腑)의 손상을 초래하는 불상사를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상사와 불행은 이들 주당이 낸 돈 만큼에 해당할 정도만이라도 질이 괜찮은 술, 즉 속성발효를 위한 이스트 대신 전통의 누룩을 쓰고 질이 좋은 햅쌀을 원료로 하여 충분한 발효과정과 숙성과정을 거쳐 어떤 첨가물이나 감미료도 사용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풍미, 깊은 맛의 술을 만들어서 제공했다면 상당 부분 예방이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 11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오른 만큼 쌀이나 곡식이 부족하거나 그저 빨리빨리 많이 만들어서 대량 판매로 대박을 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에서 비롯된 ‘속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오랜 역사를 지닌 한민족 전통의 지혜와 맛과 향, 문화를 함께 발효 숙성시켜 완성한 세계적 ‘명주(名酒)’를 세상에 선보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仁山 金一勳)의 유지를 펴기 위해 1987년 죽염을 산업화하여 31년 동안 소금장수 외길을 걸어온 필자가 인산연수원의 삼봉산 해발 5백여 미터 지점의 지하 2백여 미터 암반층에서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미네랄 풍부한 광천수를 이용해, 질 좋은 찹쌀과 직접 만든 누룩으로 16도~18도의 술을 빚고 그것을 다시 증류시켜 42도, 72도 증류주를 최근 완성했다.
16도짜리 청주의 이름은 청비성(淸比聖), 42도 증류주는 월고해(越苦海), 72도 증류주는 적송자(赤松子)이다. ‘청비성’은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天若不愛酒)/술별은 하늘에 없었을 테고(酒星不在天)/땅 또한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地若不愛酒)/술샘이 땅에서 솟아났겠는가(地應無酒泉)/하늘도 땅도 술을 사랑한 것이니(天地旣愛酒)/술 좋아하는 게 하늘에 부끄러울 일일까(愛酒不愧天)/청주는 성인에 비유한다 들었고(已聞淸比聖)/탁주는 현자 같은 존재라 하더라(復道濁如賢)/성현이 모두 술을 즐기니(聖賢旣已飮)/무엇 때문에 따로 신선 되기를 바랄손가(何必求神仙)/석 잔 술에 대도를 통하고(三盃通大道)/한 말 술에 자연과 하나 되나니(一斗合自然)/이 모든 건 취해서야 얻는 즐거움이라(俱得醉中趣)/술 깬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소(勿謂醒者傳)”
어쨌거나 소금장수가 술을 빚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대답에 앞서 먼저 한 가지 물어보고 싶다. 주당이 술 먹는 게 무슨 죄인가? 정말 주당은 죄가 없다. 질이 좋지 않은 술을 만들어 먹도록 한 술 장사꾼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나의 대안이다.
죄 없는 주당들의 속을 덜 손상할 좀 더 질 좋은 술을 빚어 안심하고 마시게 하고 술값으로 치른 만큼 그 이상으로 기분 좋게 취하게 하며 술이 몸 안에 들어가 일으키는 따뜻한 행복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소금장수의 영역을 넘어 술을 빚어 제대로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술이라 해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철칙은 건강을 해칠 정도의 지나친 음주를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서 당적이 따로 없는 나의 소속당은, 국경을 초월한 범세계적 정당인 ‘주당(酒黨)’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어느 자리에서나 술잔을 마주하다 보면 같은 당 소속 인사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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