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득 선생이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나는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학생들을 너무 다그치는 것은 아닌가?’ 시골에서 태어나서 기대를 받고 칭찬을 들으며 자라고 고향에서 선생 노릇하는 탓에 내 자신을 돌아 볼 기회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교육 환경을 탓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기 합리화에 빠져 너무 안일하게 지내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고 미래의 비전을 향해 오늘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인생은 참 불쌍하다고 친구들과 열변을 토하며 밤을 지새우던 젊은 날이 그립습니다. 아톰(선생님의 헤어스타일이 만화에 나오는 아톰을 닮아서 붙여진 별명) 선생님께서 지도하시는 한문 시간에 군자삼락을 읽었습니다. 전형적인 M자 흰 대머리의 선생님께서 바지 속에 입은 파자마를 끌어 올리시면서 안경 너머로 꼬꼬당한 눈매로 우리들을 보시며 부모구존하고 형제무고가 제 일락야요.(父母具存 兄弟無故 第一樂也) 앙불괴어천하고 부부작어인이 제 이락야요(仰不傀於天 俯不怍於人 第二樂也). 득천하영재이 교육지야가 삼락야니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第三樂也)하시며 몇 번을 읽어 주시고 따라 읽고 공책에 옮겨 적게 하시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다 적었나? 자아 잘 들어라.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들이 아무 탈이 없는 기 첫 번째 즐거움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들을 대할 때 부끄러움이 없는 기 두 번째 즐거움이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기 세 번째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리 살기가 쉽지는 않다. 이리 살면 얼마나 좋겠노? 나는 이런 복이 없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형제간들 중에 아픈 사람도 있고, 살아가면서 부끄러운 거 투성이고 단지 느그들이 세 번째 주인공이 되믄 좋겠다.”며 힘주어 말하시던 아톰 선생님이 너무도 그리운 밤입니다. 수능 문제 한 문제라도 더 맞히도록 문제집을 풀고, 답을 어떻게 짧은 시간에 실수 없이 찾는지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드는 수업이 최고이고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실력 있는 선생처럼 여겨지는 요즘 세태입니다. 문득 백발이 성성하고 노인 냄새가 나던 아톰선생님이 왜 그리 그리울까요?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백발성성하신 모습으로 카랑카랑하게 우리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기 위해 애쓰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부모님이 을매나 오래 사시겐노? 애 앤가이 믹이고 살아계실 때 잘 해라.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하늘 무서운 줄 알고 넘들한테 부끄러운 짓 하지마라. 그라고 선생만 가르치는 기 아이다. 사람이 서이 가믄 반드시 선생이 있다 캤다. 말귀 알아듣는 좋은 사람들 마이 맨들고 서로 의지하고 살아라. 오늘 배우는 군자삼락은 이기다.” 그때는 고리따분한 노인네 선생님이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오십이 넘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니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던 그 말씀들이 정말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왜 그기 있노? 니는 지금 뭘 하고 있노?” 당황스럽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무엇을 하려고 여기에 있지?’ 작년에 우리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답니다. 몇 년 전 법화산 자락에서 선생님을 뵙고 무심하게 지내왔습니다. 다음에 선생님 뵈러 다녀온다는 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백발성성하시던 우리 은사님의 혼령이 나를 나무라시는 듯합니다. 선생 노릇 똑바로 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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