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한파 같은 추위, 동장군 기세가 대단하던 1월도 지나고 이제 2월이다. 계절은 겨울 속에 머물러 있지만 2월엔 바람 속에 봄 냄새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따뜻한 봄이 어서 오기를 바라는 마음속에 피어나는 꽃이 하나있다. 매화꽃이다. 찬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봄바람을 맡은 가지 끝에 볼록한 봉우리들이 부풀어 오르면서 은은한 향기를 내는 꽃으로 추울수록 그 향기는 짙어진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매화는 꽃을 강조한 이름이다. 매화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는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피는 ‘동매(冬梅)’, 눈 속에 피는 ‘설중매(雪中梅)’라고도 한다. 또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고 부른다. 곧은 기개로 피는 꽃이기에 많은 선비들과 위인들이 좋아했으며, 봄이면 그 꽃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재주가 있는 매력 가득한 꽃이다. 매화꽃을 생각하다보니 얼마 전 다녀온 곳이 떠오른다. 중국 상해의 루쉰 공원이다. 커다란 연못을 따라 잘 정비된 공원 한 가운데 ‘매원’(梅元)이 있으며, 매원 안에 2층 목조건물 ‘매정’(梅亭)이 있었다. 고목의 매화나무가 가득한 이곳은 윤봉길 의사가 일왕의 생일 및 전승 축하를 위한 일본군 열병식 행사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장소이기도 하다. 공원 내 유일하게 15元의 입장료를 받는 이곳은 ’윤봉길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이라는 한글간판을 달고 있었다. 해외에서 만나는 한글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는데, 이 간판은 서경덕 교수와 배우 조재현씨가 해외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글간판 달기행사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윤봉길 기념관 00m’이라는 한글 이정표를 보고 갈 수 있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1월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매화들이 하나 둘,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곳에 매화향기가 가득할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던 중에 3.1운동을 겪고, 오치서숙에 들어가 매곡(梅谷) 성주록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할 무렵 매곡 선생이 석별의 정으로 아호를 지어주었는데, 매곡(梅谷)의 ‘매(梅)’자와 윤봉길이 평소 흠모하던 성삼문 선생의 ‘매죽헌(梅竹軒)’에서 ‘헌(軒)’자를 떼어 ‘매헌(梅軒) 윤봉길’이 되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1931년 상하이로 향했으며, 이곳에 도착한 윤의사는 한인애국단에 가입 한 후, 1932년 4월 29일 이곳에서 일왕의 생일 및 전승 축하를 위한 일본군 열병식 행사장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붙잡힌 윤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1932년 추운 겨울날 일본에서 순국하였다. 이 사건으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인이 해냈다’며 극찬을 하였으며, 임시정부는 중국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으며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당시 25세의 나이, 어린 두 아들과 그리운 아내, 그리고 늙은 부모님을 뒤로 하고 당당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기를 결심한 사나이의 비장함이 매정 1층과 2층 전시관에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춥고 긴 겨울을 견디고 차디찬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를 생각하니 윤봉길 의사의 삶이 절로 생각난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미련 없이 떠나간 그의 영혼이 매화나무 가지마다 달려 있는 듯하다. 매정 가득한 매화향기를 상상해보며 비록 삶은 고단했으나, 그의 영혼은 은은한 매화 향기 속에서 편안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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