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 중에는 나는 옳고 상대방은 잘못되었고, 나는 정의롭지만 상대방은 불의하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을 비하하고, 억압하고, 무시하는 우월주의가 있다.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과 협력으로 하나 되어야 할 사회 공동체가 깨지고 반목하여 사회적 갈등이 일어난다.
미국에서는 백인우월주의로 인하여 언제나 사회의 안전과 평화가 위협당하고 있다. 백인이 우월하여 서양문화가 세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생각은 그들만의 착각이지 진실이 아니다. 서양문화에 녹아 든 기독교 사상이 백인들을 깨우쳐 그 힘으로 서양문화가 발달했지, 결코 인종의 차이에서 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타락으로 생겨난 인종우월주의로 인한 세계전쟁이 두 차례나 발생하였다. 그 대표적 국가가 두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다. 독일은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며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이러한 비극적인 일들이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독일의 나치즘에 이어 모든 나라에게 큰 피해를 준 사상이 바로 공산주의였다.
그들은 자신은 정의롭고 반대편은 타도해야 할 대상임을 설정하고 거짓과 기만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제거하여 갔다. 부패세력을 척결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외치며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짐승 다루듯 하였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은 피의 숙청으로 얼룩진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나라들은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며 국민들을 속인다. 북한 사람들을 보면 왜 그리 미국을 미워하고 증오하는지 딱할 정도이다. 물론 우리도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온통 잘난 사람들이 많아져서 잘못은 없는데 많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그 때마다 우리는 그 활살을 자신에게서가 아닌 상대방에게 찾는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한 죄성이다.
내가 맞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은 높은 자리에서 남을 판단하고 분노하게 된다. 그 분노가 맹렬한 불이 되어 자신과 상대방을 사른다. 이런 현상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 때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나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고 반성하고 고쳐나가자 하는 운동이 1990년 초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바로 ‘내 탓입니다’이라는 스티커가 등장하여 차량에 붙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정풍운동에 동참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할 때만이 그 실수가 고쳐지고 만회할 수 있는데 그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면 자신은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실수가 반복된다.
최근 청와대 사람들은 독재 정권과 싸우고 민주화에 몸 던졌다는 ‘도덕적 우월 의식’을 갖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정감사에서 말한 답변에서 금세 눈치챘다. 야당 의원이 반미와 주사파(북한의 김일성 주체 사상)를 거론하며 “전대협 출신 운동권 여러 명이 청와대에 있다”고 하자, 임 실장은 “5·6공화국 때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인생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작년 11월 6일 대통령 비서실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이것은 ‘너희’보다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말이었다.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는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현 정부 인사의 저류에는 도덕적 우월 의식이 흐르고 있다. 물론 자긍심은 좋은 것이고 필요하다. 하지만 건강한 자긍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격려도 포함되어 있지, 결코 비하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다.
때로는 남이 우리를 더 잘 아는 법이다. 일본 학자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로 규정한다. 실제 삶이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해 평가한다는 뜻이다. 오구라 교수는 최근 번역된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조선 시대에는 도덕을 쟁취하는 순간 권력과 부도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믿고 있었고, 지금도 한국 사회는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극장”이라고 지적하였다.
자신이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았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내로남불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 되는 식견으로 자신의 도덕적 수치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한 부정한다.
그러므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한 속담처럼, 우월주의의 가지가 많은 이 사회에서 시끄러움과 다툼과 사고가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제 이 고통과 분열의 바람을 멈추도록 다시 한 번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남이 아닌 나의 허물임을 알고 나부터 그리고 우리부터 반성하여 문제를 고쳐나가는 그런 주인 된 마음, 책임 있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살아가서 이 사회가 정말 다시 한 번 새롭게 변화되고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서로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부부는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먼저 자신에 두고 이것을 고쳐 나가면 반드시 이러한 평화가 가득한 가정, 공동체 그리고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반성의 힘이다. 반성은 놀랍게도 자신과 함께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예수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네 눈에 있는 들보를 꺼내어라 그래야 비로소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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