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서 우리 온 가족은 감기에 걸렸습니다. 모두가 약을 복용하고 감기 퇴치를 위해 끊임없이 링거주사를 맞았습니다. 딸은 감기가 너무 심하게 걸려서 일주일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진주 제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코에 염증이 심하여 바로 입원했습니다. 일주일 넘게 입원하다보니 평일에 시어머님이 아이를 돌봐주시고 저는 주말에 가서 딸을 돌보았습니다. 일요일 병원에서 딸과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베트남 친정 엄마가 전화를 주셔서 아침 6시에 친 큰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대화를 하고보니 머리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는 아직 젊고 건강하신데 왜 돌아가셨는지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큰아버님이 돌아가시어 빨리 준비하여 큰아버지 집에 가야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큰아버지 집에 거리는 약 3시간정도 걸립니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가족과 친척들이 가까이 살았습니다. 경제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큰아버지 가족은 멀리 이사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이사한지 얼마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의 기억에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매일 학교에 갔다 와서 저녁을 먹자마자 엄마에게 큰아버지 집에 놀러갈 수 있게 허락을 받고 갔습니다. 놀다보니 너무 재미있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잊었습니다. 저에게 큰아버지 가족의 오빠와 언니들은 사촌형제이지만 친형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멀리 있는 언니들이 생각이 나서 바로 전화했습니다. 큰아버지 자손은 아들 둘 딸 둘이 있습니다. 오빠들은 베트남에서 결혼하고 큰아버지 집 주변에 살고 있습니다. 작은 언니는 대만에 시집 간지 16년 넘었습니다. 작은 언니는 16살과 14살 딸 2명이 있습니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받고 나서 작은 언니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습니다.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보였지만 작은 언니가 일어나서 큰아버지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언니남편과 애들은 여권이 만료 되어서 어쩔 수 없어서 작은 언니 혼자 항공권을 마련하여 가야했습니다. 6시에 베트남의 전화를 받고 나서 11시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작은 언니는 비행기를 타니까 연락을 못해서 더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호치민 공항에서 작은 언니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작은 언니를 만나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에서 풍습에 따라서 사람이 돌아가는 시간을 보고 시신을 관에 넣는 시간과 관이 이동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아침 6시에 돌아가셨으니 오후 6시부터 7시 그 사이에 시신이 관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저는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작은 언니가 큰아버지 마지막 얼굴도 못 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땐 작은 언니가 시간과 싸운 것 같았습니다. 보통 3시15분 호치민 공항에 도착했는데 통관하고 나서 나간다면 4시정도 됩니다. 호치민 공항에서 큰아버지 집에 가려면 약 3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이고 그날 왠지 비행기가 일찍 도착하고 세관에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먼저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작은 언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작은 언니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걷지 않고 뛰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여동생과 만난 시간이 3시 30분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말씀을 드리니 이해주셔서 최선을 다 해주시어 큰아버지 집에 도착 시간이 6시15분이었습니다. 작은 언니가 집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작은 언니가 쓰러져 울었지만 큰아버지가 영원히 떠나셨습니다. 큰언니는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큰언니는 이번 설날 베트남에 가고 싶어서 미리 항공권을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상황이 일어나서 바로 항공권을 바꿀 수 없어서 그날 못 갔습니다. 그래도 백방으로 노력해서 다음 날에 집에 왔습니다. 큰언니는 큰언니답게 작은 언니처럼 많이 울지 않지만 얼굴을 보니까 2일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눈물을 다 흘린 것 같았습니다. 장례식 4일후에 마지막 큰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에 있는 묘지에 모셨습니다. 아침 7시에 관을 이동하고 11시에 고향에 도착했습니다. 고향에서 친척들과 이웃들이 많이 와 있고 큰아버지를 하늘에서 보면 마음이 따뜻해 질 것 갔습니다. 옛날에 고향에 아직 살았을 땐 큰아버지의 마음이 착하고 다정하게 지내서 이웃사람들은 모두 다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어 큰아버지는 가족들과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니고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큰어머니, 오빠들, 언니들 그리고 조카들의 얼굴을 보니까 눈물이 계속 흘렸습니다. 미국에 계신 막내 고모, 저 그리고 싱가포르에 있는 작은 아버지의 딸은 큰아버지 장례식에 못 갔지만 항상 영상통화하고 큰어머니와 오빠 언니들에게 위로하고 슬픔과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마지막 큰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5년 전에 베트남 방문할 때는 큰아버지 집에 놀려간 것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기억이 생생하고 저에게 아주 기쁘고 좋은 주억이었습니다. 큰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많이 고생하셔서 이제 편하게 쉬시고 좋은 곳에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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