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으로 널린 게 다 약이다”는 남편과 “약초는 내가 더 잘 판다”는 아내.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티격태격 사랑싸움은 한창이다. 지리산함양시장 약초가게 1호 격인 ‘지리산약초’ 정성만(68)·서연자(66)씨 부부 이야기다. 정성만씨는 팔령이 고향인 함양토박이다. 15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약초를 채취했던 것이 평생 직업이 됐다. 정씨가 지리산함양시장에 지리산약초라는 상호로 약초가게를 연 것은 20여년 전이다. 이곳에 점포를 열기 전까지는 채취한 약초를 도매가로 넘기거나 제일극장(현 함양산청축협) 앞 노점에서 어머니가 직접 팔기도 했다. 50년 넘게 약초꾼으로 약초와 함께 살아온 정씨는 사시사철 어느 산에서 무슨 약초가 나오는지 훤히 꿰고 있다. 가게에서 팔던 약초가 떨어질 때면 필요한 약초가 나는 산에 가서 채취해 진열장을 채운다. 온 산이 다 정씨의 일터나 다름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알면 다 돈이다”는 정씨. 약초와 함께한 50년 인생이다. 약초꾼이 아닌 전문가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약초전문가다. 정씨가 약초채취 담당이라면 아내 서씨는 판매 담당이다. 20년 전 이곳에 점포를 열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약초를 팔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지리산약초에서 판매하는 약초 100여 가지 중 두 가지를 뺀 모두가 국산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함양에서 채취한 것들이다. 함양은 물론 국내에서 나지 않는 감초와 계피만 어쩔 수 없이 중국산을 팔고 있다. 지리산약초에서는 천마, 더덕, 오미자, 오가피, 우슬, 마가목 등 100여 종을 취급한다. 정씨 부부는 “요즘은 인터넷 직거래가 많고 인구도 줄어 손님의 발길이 뜸하다”며 약초가게를 찾는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라고 했다. 손님이 줄어 수입도 줄었지만 평생을 해온 일이라 매일 가게를 연다는 정씨 부부.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가게에 나와 약초를 진열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5일장이 서는 날은 한시간 빨리 문을 열고 손님맞이 준비를 한다. 이들 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약초 얘기만큼이나 재미지다. 약초가게 이야기는 잠시 접고 정씨 부부의 사랑 얘기를 들어봤다. 1972년 정씨가 23살, 서씨가 21살 때다. 서울행 완행열차에서 처음 눈이 마주쳤다. 정씨는 서울행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서씨에게 집주소를 받아냈다. 낯선 남자에게 집주소를 가르쳐 준 걸 보면 서씨도 정씨가 싫지는 않았을 터인데 “줄기차게 쫓아다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결혼했다”며 큰소리다. “후회하냐”고 하자 “후회하면 뭐해. 지금까지 살았는데”라면서 “이 양반 필체도 좋고 편지도 잘 썼어”라고 오히려 추켜세운다. “아내를 펜팔로 꼬드겼다”는 정씨의 말은 허언이 아닌 모양이다. 3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수백 통이란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정씨는 “내가 하도 편지를 자주 보내다 보니 ‘우푯값만 모아도 논을 사겠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실 정도였다”고 했다. 정씨의 애정공세는 편지만이 아니었다. 군산에 살고 있던 서씨를 만나기 위해서는 버스와 열차를 갈아타며 몇시간씩 달려갔다. 그렇다고 군산에 갈 때마다 서씨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서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허탕 치고 돌아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들 부부는 3년 열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모두 다 시집장가 보내 손자가 11명이나 된다”며 ‘손자부자’라고 자랑한다. 서씨는 5년전 오토바이사고로 무릎을 다쳐 이제 예전만큼 자주 약초산행을 할 수 없지만 품질 만큼은 최상품을 고수하고 있다. 약초가게에서 함께하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어 금슬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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