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어머니께서 저녁 식사를 같이 안하신다. “먼저 먹었다”고 하시거나 “나중에 먹는다”고 하시거나 “배가 안 고파서 안 먹는다”고 하신다. 하루는 “왜 우리랑 식사를 안하시냐?”고 여쭤 보았다. 당신께서 젊으실 때(시어머니 모시던 그 때, 90세에 작고) 할머니는 밖에서 일하고 오셔서 저녁을 챙기려는 어머니께 “먼저 먹었다”고 하시고, 어머니는 “그것이 그렇게 고마우셨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불효가 나를 휘감는다. 어찌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다 알겠는가?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셨다. 억척스럽게 일을 하시어 가정을 지키셨다. 한 많은 세월 일에 중독되어 지내오셨다. 남은 것은 노동으로 인해 거칠어진 손마디와 구부러진 허리이다. 요즘 부쩍 “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못 하시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쇠하여진 기력에 한숨만 지으신다.
한 겨울 노쇠하신 어머니를 위하여 방을 따뜻하게 해드리리라 결심하였다. 화목보일러에 사용할 땔깜을 미리 준비했다. 그리고 요즘 아침저녁으로 불 지피는 쏠쏠한 재미에 빠져 있다. 문득 활활 타버리고 재가 된 아궁이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평생 자녀들을 위해 삶을 다 불태우시고, 주어진 한의 세월을 노동으로 성화 시키시고, 마침내 타버린 한 줌의 재가 되신 것 아닌가?
누구에게 자랑하려 함도 아니요, 알아 달라 함도 아니요, 그냥 열심히 사신 것이다. 원망도 한탄도 일속에 묻어버린 것이다. 책임 질 자녀들이 있었기에 다른 남자를 보지도 않으셨다. 지금도 옷을 사 드리면 입지 않으시고 헌 옷만 고집하신다. 찌그러진 냄비도 버리시지 않는다. 살아 온 세월에 여성의 삶은 없고 어머니만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얼마나 울며 후회할까? 그 아쉬움과 허전함은 또 어찌할꺼나? 지금 속 깊은 곳 아릿하게 찔러오는 아픔이 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송강 정철의 시가 가슴을 후벼파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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