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꼬리를 밟으며 시작한 곶감 작업은 겨울 내내 이어진다. 그럴 수만 있다면 차라리 포근한 봄날이나 시원한 가을에 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일 년 농사인 이 일은 유감스럽게도 추운 겨울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곶감이 호된 추위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야 제 맛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가 구정 전에 집중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명절 전까지는 말리고 숙성시켜 포장하고 판매까지 마쳐야 한다. 곶감 깎는 농가의 하루는 차가운 겨울 해가 솟기도 전에 시작된다. 나는 엄천강 건너 이웃 마을에서 놉을 태워 오는데, 이 이른 시간이 나에게는 조금 힘이 든다. 엄천골의 양파 모종 심기나 곶감 작업은 보통 아침 7시에 시작하는데 이건 일반적인 이야기고 사정에 따라 더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일찍 시작하고 일찍 마치면 오후에 다른 볼일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새벽잠이 없는 사람에겐 차라리 일찍 시작하는 게 낫긴 하다. “내일은 새벽 5시에 데리러 와~ 어차피 내는 그 시간에 깨어 잇응께로~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자고~” “아이고~ 아지매~너무 빨라요~ 5시는 넘 힘들어요~” 이렇게 작업 개시 시간 가지고 밀당을 한다. 오후에 병원에 가야 한다든지 다른 볼 일이 있는 날에는 형편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올해 곶감 작업은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거들어 주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들은 일손만 더해준 게 아니라 스맛폰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성능 좋은 무선 스피커를 하나 가지고 왔다. 음악은 스맛폰에서 나오지만 무선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참말로 좋은 세상이다. 새로 나온 주먹만한, 별로 비싸지도 않는 스피커 하나가 작업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이다. 덕장의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맛폰 유튜브에서 말러 1번 교향곡을 잡았더니 덕장 안이 국립극장이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에 국립덕장에 가득 매달린 곶감도 전율한다. 나는 곶감 일을 하며 말러를 즐겨 듣는다. 아내는 말러를 듣고 곶감이 잘 말러라고 말러를 듣고 또 듣느냐고 놀리는데, 사실은 말러의 1번 교향곡을 들으면 봄기운이 느껴져 반복되는 단순작업을 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차가운 바람에 떨며 일을 하는데 마음까지 겨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젖소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우유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오이에게도 음악을 들려주면 오이가 더 잘 자란다고 한다. 귀가 있는 동물은 그럴 수도 있다 치더라도 귀가 없는 식물이 음악을 듣고 반응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록 귀는 없지만 음악의 파동이 식물의 세포벽을 자극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듣는 말러의 음악이 덕장에 매달린 곶감의 세포벽을 자극하여 곶감의 맛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곶감은 입이 없어 말을 못하니 그렇다 아니다 라는 대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객에게 한번 물어볼 참이다. “이 곶감은 말러 음악을 들려주고 말렸는데 일반 곶감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하고.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말러 음악을 들려주고 말린 곶감을 먹으니 입안에 교향곡이 울려 퍼지네요~” 이지만, “음악을 듣고 말린 곶감이라니~참 장삿속도 가지가지네요~”라고 해도 불만은 없다. 어차피 추운 겨울에 일도 힘들고 한번 웃자고 너스레를 떨어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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