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할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과 교과과정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한마디로 압축된 이 문장을 한두 번 접한 것이 아니다. 주목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일부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장진영의 <법은 밥이다>와 보도 섀퍼의 어린이 경제소설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읽었을 때부터 우리의 학교교육에는 실용적인 법교육과 생활경제 교육이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신문에 이 문제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 ‘법’이라는 용어에 대해 최초로 회의를 느낀 것은 초등학교 생활통지표 행동평가란의 ‘준법정신’ 때문이었다. 준법정신에 대한 3단계 행동평가를 받을 때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행동평가를 할 때나 의문은 같았다. 무슨 법을 어떻게 지키면 ‘가’에 해당하고 무엇을 지키지 않으면 ‘다’에 해당하는가를 고심하던 그 행동평가는 이제 사라졌지만 법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다.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는 독일에서 초등학생 아들의 이웃집 담벼락 낙서로 인해 법의 제재를 받았던 경험을 쓰면서 “독일은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법은 터득한다”고 했다. 가정, 학교 사회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경찰이 과학적으로 낙서를 분석하는 것, 타인의 재산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공정하게 재판을 받는 것, 판결에 따라 봉사활동을 했던 그 모든 과정이 학생의 인권침해 없이 교육에 목적을 두는 것이 고무적이었다고 했다. 법의 터득을 책이 아닌 직접적 체험으로 한 것이다. 독일여행의 현지 한국인 가이드는 초등학생인 자기 아이와 갈등요인이 내재된 어떤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민법 제 몇조 몇항에 의하면“으로 문장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학교교육에 의해 논거없이 견해를 밝히는 일은 없으며 논리적인 어법은 생활화되었다고 했다. 한국과는 몹시 다르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독일인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은 ”독일은 어느 집이나 법전이 비치되어 있으며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법전을 선물하는 것은 상례“ 라고 했다. 경제는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장르다. 문 밖만 나서면 모든 것이 돈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산책이 아닌 한 어디를 가든 지갑을 소지해야 한다. 학교는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경제교육을 개괄적이거나 이론적으로, 주요인물의 사상이나 업적 중심으로 가르쳤다. 그러나 아담스미스의 <국부론>보다 열두살의 키라가 돈을 버는 과정이 더 효율적인 경제교육이다. 용돈기입장을 쓰게 하거나 초빙강사의 한 두시간 강의로 경제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경험없이 금융기관에서 하는 일을 몇 줄의 설명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계의 화폐를 공부하는 북유럽의 초등학교 수업을 방송으로 보면서 그 화폐수업 뒤에는 분명 돈과 관련된 구체적인 수업이 진행되리라 생각했다. 팀을 나누어 각자 원하는 나라의 화폐를 선택하여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는 수업은 실질적이었다. 돈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우리 교육과 달랐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는 ‘부자는 나쁜사람’으로 만든 옛날 이야기가 많이 소개된다. 욕심이 많거나 ‘돈을 밝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은연 중의 설화교육은 부富에 대한 편향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열두 살의 키라가 정당한 댓가로 돈을 벌고 금융을 이용하여 돈을 늘려가는 동안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가난한 흥부는 착한사람이라서 제비가 ‘복’을 물어다주고, 욕심 많고 부자인 놀부는 더 욕심을 내다가 벌을 받는다는 교육을 받는다. <흥부와 놀부> <도깨비와 개암>의 원 취지는 인간과 사회를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이지만 깊숙이 들어가면 왜곡된 경제의식과 비현실적인 권선징악이 도사리고 있다. 부의 축적 과정에 비리나 악의가 있었다면 지탄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옛날이야기를 실은 교과서에서 앞뒤 설명없이 ‘욕심’과 ‘부자’는 악이 되는 일방적인 교육은 문제가 있다. 되돌아보면 법에 대한 교육은 “지켜라” 였고, 경제교육은 “아껴라”였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가 빠져있고 가지지도 않은 돈을 더 이상 어떻게 아끼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일이다. ‘법’ 하면 떠오르는 것이 ‘교통신호’라는 것, 돈을 쓸 때마다 마치 해서는 안될 짓을 한 것처럼 죄의식이 든다는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말이다. 초등학교때부터 실용적인 법교육과 경제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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