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악 관광지로 거듭나는 함양군은 지난 11월 9일 대봉산 소원바위 주변을 새단장하고 제를 차려 천진신명에게 예를 올렸다. 연간 7만 여명의 등산객이 소원을 빌며 다녀간다는 대봉산 소원바위에 서면 함양군을 감싼 해발 1000m 넘는 13개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손에 잡힐 듯 어서 오라면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금 조망하는 산들이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니 지난 10월 21일부터 27일까지 케이블 기획 스위스 취재에서 보았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단 10분간 스쳐간 스위스 현지취재 기억을 지면으로 옮긴다.
스위스는 기차다10월21일 오전 6시 함양을 벗어나 21일 오후 10시 스위스 취리히 중앙역 근교 숙소에 짐을 풀기까지 16시간이 걸렸다. 한국과 스위스간의 8시간 시차를 감안하면 꼬박 24시간을 하늘과 땅을 오가며 보낸 셈이다. 유럽행 비행기에 난생 처음 몸을 실었다. 장시간 비행 탓에 22일 반나절을 침대에서 보냈다. 이번 생에 마지막 유럽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몸을 깨웠고 츄리히발 베젤행 기차에 올랐다. 스위스 하면 떠올랐던 시계, 알프스 소녀 하이디, 군용 칼 같은 이미지는 작은 마을 곳곳을 이어주는 스위스 기차를 타고 사라졌다. 스위스는 기차의 나라다. 이런 느낌은 24일 등산열차를 타고 리기산을, 25일 세상에서 제일 빠른 톱니바퀴기차(cog railways)를 타고 필라투스 정상에 올랐을 때 확신했다.전국 노선의 스위스 국영 철도는 30분마다 출발하고 최신 설비를 갖춘 IC열차가 스위스 모든 도시를 이어준다. 유럽에서 가장 깨끗하고 현대적인 역사를 갖췄다는 스위스 자부심은 역사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 것에 실망한 나에게도 대단하게 느껴졌다.그리고 하나 더. 광주대구고속도로가 동서로 지나고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지나는 함양이 떠올랐다. 서북부경남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인 함양군에 내륙철도가 들어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요흐 출발점 인터라겐으로 향했다.숙소는 인터라겐 취재는 루체른인터라겐은 베른 동남쪽의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위치해 ‘호수 사이(between lakes)`라는 의미를 지닌 마을이다. 23일 츄리히를 출발한 열차는 1시간 50분 만에 인터라겐 웨스트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인터라겐 관광안내센터로 향하며 처음 마주친 풍경은 함양읍 버스터미널 앞 회전교차로를 떠올릴 정도로 유사했다. ‘인구 6000명의 작은 시골마을이 왜 스위스 관광의 중심지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은 곧 풀렸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가 있는 융프라우요흐를 비롯해 실트호른, 라우터부룬넨, 그린델발트, 뮈렌 등을 올라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전진기지가 인터라겐이다. 이곳에서 유럽의 지붕으로 가는 산악열차가 출발하고 케이블카를 이용해 산악관광이 시작된다.‘가는 날이 장날이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인터라겐에 도착한 10월 23일은 융프라우요흐 행 케이블카 점검 수리 기간이 시작되는 날로 인터라겐 일대의 모든 케이블카는 운행을 멈췄다.‘난감하네~~~’ 한숨 섞인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케이블카 기획으로 스위스까지 왔는데 ‘앙꼬 없는 기사’가 될 처지다. 스위스 출발전 함양도서관에서 빌려 온 가이드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가이드북은 루체른의 필라투스와 리기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24일 인터라겐 발 루체른 행 첫차를 탔다. 가이드북을 믿었지만 혹시 모를 일정 변경을 대비해 일찍 숙소를 나선 것이다. 소지했던 스위스패스는 기차와 유람선, 산악철도,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1타 4피(?)’의 마법을 선물해줬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환승해 2시간만에 루체른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탑승은 점심도 잊게 했다. 루체른 중앙역 앞 선착장에서 플뤼렌행 유람선을 타고 베기스에 내려 케이블카 안내표지판만 따라 갔다. 20분만에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타났다. 1시간 마다 운행하는 리기쿨룸 케이블카에 몸을 맡기고 나서 한숨을 돌렸다. 목적지 리기 칼트바트까지 10분, 고도가 높아지며 펼쳐지는 루체른 호수와 스위스 산맥들의 풍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멍하니 풍경만 보다 정작 중요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내려가는 승강장엔 탑승 인원이 만원이라 3시간을 기다려한다는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블카 풍경 사진은 찍어야한다. 리기산 정상산행은 포기하고 역순으로 등산열차를 타고 다시 내려가 유람선을 탔다. 뛰었다. 또 뛰었다. 그리고 24일 마지막 상행 케이블카를 간신히 탔다. 몇 시간전 보았던 풍경은 그대로였다. 몇 장의 사진과 맞바꾼 땀으로 온 몸을 적셨고 눈 덮힌 리기산을 데웠다.
가이드는 <아리랑 싱어즈> 리더 보컬해외 취재의 성패는 가이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언어 소통을 넘어 현지 사정까지 모든 것이 가이드로부터 나온다. 행운이 찾아왔다. 그가 88 서울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부른 그룹 <코리아나>의 전신 <아리랑싱어즈> 리더 보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만나지 몇 시간이 지나 인터라겐을 행하는 기차 안이었다. 유창한 독일어와 불어, 영어까지 그는 든든한 동반자였다. 현지 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45년째 스위스에서 음악과 함께 살아왔다는 가이드 홍신윤 씨를 마주했다. 스위스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한국 음식점 주인이 건넨다. 홍신윤(77)씨. 늘 그의 이름 앞에는 ‘아리랑 싱어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국보다 스위스에 더 알려진 유명음악가이다. 1966년 26세의 나이로 그는 월남전쟁 파병 군인들을 위해 위문 공연단을 조직하여 해병대로 지원 입대했다. 1977년에는 <아리랑 싱어즈>를 탄생시켜 스위스를 시작으로 전 유럽을 돌며 활동했다. 홍 씨는 <아리랑 싱어즈>를 3년간 이끌었다. 그 후 나머지 멤버들은 <코리아나>로 분리해 활동하고 그는 <아리랑 싱어즈> 멤버였던 부인과 함께 스위스에 남아 듀오로 활동했다. 그는 음악가, 작곡가, 편곡자로 스위스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고르바쵸프 대통령을 위해 작곡한 ‘페레스토이카(개방)’가 알려지게 되면서 고르바쵸프가 스위스를 방문하자 직접 고르바쵸프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 노래하는 기회를 맞았다. 이 공연으로 홍신윤은 스위스에서 더 유명해졌다. 그는 핸드폰에 담긴 당시 공연 영상을 보여주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여행사 측에 가이드 나이가 많아 불편하다던 출발 전 투정이 부끄러워졌다. 또 한국에 돌아와서야 스위스의 전통 악기와 노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의 모든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유일한 동양인 음악가였던 홍신윤 씨를 제대로 알게 됐다. 소로 시작해서 소로 끝나는 스위스이번 스위스 취재 동안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알프스 산맥도, 톱니기차도, 케이블카도 아닌 광활한 초지에서 누비는 소였다. 소떼를 몰며 루체른 피츠나우 역 앞을 지나는 목동의 발걸음은 활기찼다. 그의 손에 쥔 방울에서 소리가 울리자 차들은 멈췄다. 유유자적 초지에서 목장으로 돌아가는 소들의 모습도 여유롭게 보였다.스위스 취재 마지막 날 기념품을 사기위해 슈퍼마켓 쿱(COOP)에 갔다. 거기에도 어김없이 스위스 소의 흔적이 있었다. 최고 낙농업국가답게 진열대의 유제품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치즈와 초콜릿 심지어는 도자기 컵과 장바구니 아이템도 소 모양이 새겨져 있다.선물 자문을 얻으러 말을 건넨 점원은 검지로 가르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스위스 초콜릿과 치즈 그리고 와인을 추천했다. 스위스 와인은 해외수출이 안돼서 꼭 한번 맛보고 떠나라는 말도 덧붙였다. 26일 저녁 9시 취리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를 타기위해 트림(공항 철도)에 올랐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스위스에 도착했던 21일에도 들었던 익숙한 음향이다. 소 울음소리다. 스위스 취재는 소 음향소리로 시작해 음~~메하며 잘 가라는 소 울음소리를 들으며 5박 6일간 일정을 마무리했다. 박민국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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