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여름에 벌초를 하러 갔는데 산 속에서 총소리가 크게 울렸다. 작년에 왔을 때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그 날에는 사람이 깜짝 깜짝 놀랄 정도의 총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근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어서 사격 훈련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실제 사격하는 소리가 아니고 과수원에서 새를 쫓기 위해 설치해 놓은 녹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당시에 필자가 사는 지역에는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가 없어서 총소리를 내서 새를 쫓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벌초를 하면서도 마음이 좀 불편했다. 하지만 벌초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끝나는 일이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사과를 재배하는 마을에 2년 정도 살았고 또 실제 사과농사도 해 보았는데 사과 농사가 옛날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1년 해보고 사과농사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일수도 있겠지만 초보 과수 농사꾼에게 보인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좋은 과실을 수확하기 위해 농부들이 저마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무조건 많은 양을 수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량은 좀 적더라도 양질의 제품을 생산해야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에 농가마다 사과나무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을 솎아주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열매 솎는 작업을 사과를 수확할 때까지 계속해서 해 나간다. 그러면 사과를 수확할 즈음에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는 그야 말로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귀한 산물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혹 새가 그 열매를 쪼아 상처를 입히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떨어뜨리기에 농부들로서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막고 땀 흘려 키운 열매를 기필코 지켜야 한다. 그래서 아예 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들을 연구를 했을 것이고 그 중의 한 가지가 총소리를 내서 새의 접근을 막는 것이었으리라.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여전히 총소리를 들으면 심기가 편치 못하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총소리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솔직히 들기도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과수원은 총소리를 내지 않고 사과밭 전체에 그물을 씌워서 새로부터 입는 손실을 막는 시설을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해 놓은 과수원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실제 사과농사를 할 때에 이웃에 넓은 사과밭을 경영하는 분은 총소리도 내지 않고 그물망도 씌우지 않은 채 사과 재배를 하고 있었다. 새가 와서 사과를 많이 쪼아 먹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하였다. 한 번 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며 특히 시골은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에 대한 세심한 배려이다. 그것이 없으면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어 나가기가 사실상 어렵다. 밤낮으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거나 깜짝 깜짝 놀랄 정도의 총소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 삶의 현장을 깊숙이 들여다 볼 줄 아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곳에는 갓 아기를 잉태한 임산부가 있을 수도 있고,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기 뿐 아니라 가축과 짐승의 새끼들이 곤히 잠들어 있을 수도 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큰 수술을 하고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나 오랫동안 투병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총소리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리라.
지난 주 금요일 직장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갔는데 아이들이 난리였다. 밤에 이상한 음악 소리가 크게 나서 무서움에 잠을 설쳤다고 하였다. 2층에 자기들 방이 있어서 그 곳에서 자는 딸들은 무서워서 이제 2층에서는 잠을 못자겠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창문이 2중으로 되어 있어서 창문을 닫으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창문을 닫아도 소리가 들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말 집에 도착해 보니 밤 9시가 다 되었는데 음악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닫아도 소리가 들렸다. 음질도 좋지 않은데다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상한 음악이 그것도 밤새도록 직직거리면서 나니 아이들이 무섭고 싫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어제는 이 소리보다 더 컸는데 누가 민원을 넣었는지 소리가 조금 줄었다고 하는데, 밤중에 나는 소리는 낮보다 훨씬 크게 들리는 법이다. 외지에서 시골로 들어와서 산기슭에 터전을 마련하여 집을 짓고 농사도 지으면서 사는 사람의 집에서 얼마 전부터 내는 소리라고 한다. 아들이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음악소리가 나오는 곳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들리지도 않겠지만 그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심히 몸살을 앓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연일 매스컴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따뜻해야 할 우리 인간의 가슴들이 냉랭하게 식어져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성경에서도 말세에 나타날 현상 중에 하나가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다. 매스컴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비난하고 정죄하기 전에 우리들 모두가 한 번 더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좀 더 깊이, 그리고 냉철하게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새를 쫓는 총 소리와 같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곳곳에 자리 잡은 다른 사람보다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삶의 양식들이 우리 사는 세상을 조금씩 멍들게 하고 혹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따뜻한 온기도 점점 멀리 쫓아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쌀쌀한 계절에 훈훈한 난로와 함께 따뜻한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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