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진곶감 깎을 철이 되어 덕장에 쌓아둔 감 박스를 내리는데 박스 안에 야생벌 세 마리가 꼼짝도 않고 붙어있다. 나는 ‘이것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며 탁탁 털어 냈다. 거실 창에는 이름 모를 벌레 한 마리가 꼼짝도 않고 붙어있다. ‘이것이 여기서 뭘하는 거지?’ 했는데 며칠째 움직임이 없어 죽은 건가? 싶어 다가가 보았다. 돋보기를 끼고 가만히 보니 아! 더듬이가 한 번씩 움직인다. 땅 색의 갑옷을 입은 이 벌레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정진에 들어간 것이다. 물 한 방울 안마시고 용맹 정진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감 박스에서 털어낸 야생벌 세 마리가 오버랩 되었다. 그것들이 안거에 들어간 것도 모르고... 방해해서 미안해...이제 안거에 들어갈 때다. 벽송사에는 중들이 벽을 보고 안거에 들어가고, 곶감 덕장에는 감들이 옷을 벗고 바람에 흔들리며 정진에 들어간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감은 오묘한 맛의 진리를 깨칠 것이다.2. 숙성곶감 깎을 철이 되니 살짝 흥분된다. 추수 끝나면 농한기라지만, 엄천골 곶감 농부는 찬바람 불면 농번기다. 무서리 한두 번 내리고 감의 뽈때기가 빨개지면 감을 깎아 덕장에 주렁주렁 매단다. 곶감 농사를 오래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저는 아니었다. 이 당연하고 별스럽지도 않는 소박한 상식 하나를 얻기 위해 나는 십 수 년 동안 많은 감을 버렸다.곶감은 말리는 게 아니고 숙성시키는 거였다. 사람들은 바람이 부니 감이 잘 마른다고 한다. 사람들은 감이 마르면서 단맛이 생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곶감을 먹으며 “그래 감은 이래 말려야 제 맛이지” 한다. 뭐 진짜 맛있는 곶감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건조만 잘된 곶감도 맛있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잘 말린 곶감이 아닌 잘 숙성된 곶감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잘 숙성된 곶감을 먹고 “아~ 이건 옛날 곶감 맛이네” 하는 사람이 있다. 잘 숙성된 곶감을 먹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사람이 있다. 잘 숙성된 곶감을 먹고 “혹시 곶감에 꿀을 바른 게 아니냐”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이 있다. 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옛날 곶감은 정말 그랬다. 옛날 날씨는 곶감을 말리면서 동시에 숙성을 시켜 주었기에 외할머니가 시골집 처마 밑에 매달은 곶감이 꿀맛이 났던 것이다. 옛날에는 사흘 춥고 나흘 따뜻했다. 꿀 곶감을 만들기 위한 날씨의 황금비율, 옛날 곶감은 하늘이 선물한 맛의 오르가즘. 곶감은 건조가 아닌 숙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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